「인커밍」 겨울호 (인터뷰) 22대 국회가 꼭 만들자, 과로사 방지법 (최승현 기본소득당 최고위원·노동안전특별위원장)
22대 국회가 꼭 만들자, 과로사 방지법
[인터뷰] 최승현 기본소득당 최고위원·노동안전특별위원장
인터뷰어 오준호 (인커밍 발행인,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어릴 적,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감명받았다고 한다. 최승현 위원장에게 좋아하는 문학작품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딸에게 추천하기 위해 최근 한 번 더 읽었단다.
모모가 ‘시간도둑’에 맞서 벌이는 모험 이야기가 좋았다고 한다. 필자도 『모모』를 읽었다. 모모에겐 남다른 능력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최 위원장이 하는 일도 그런 재능이 필요하다. 그는 17년째 공인노무사로 일하는데 업무의 많은 시간을 노동자와의 상담으로 보낸다. 특히 산재 관련한 상담이 많다. 다치고 병든 노동자, 혹은 돌아가신 노동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는 또한 기본소득당의 노동정책 전문가로서 오래 활동했다. 지난 21대 국회 용혜인 의원 수석보좌관으로 국회에서 노동법률을 만들고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당 최고위원이자 노동안전특별위원장으로 벌어지는 노동 사안에 대응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퇴행하는 모든 분야 중에도 노동권 후퇴는 더 심각하기에 최 위원장도 늘 바쁘다.
노동권 보호를 위한 당면한 과제부터 노동과 기본소득의 관계까지 최승현 위원장에게 두루 질문했다. 인터뷰는 10월 16일 여의도에서 진행했다.
노동에 대한 존중, 노동에서 벗어날 자유
한 언론사가 한강 작가를 인터뷰하며 첫 질문으로 지금 있는 곳의 풍경이 어떤지 묻더라. 그 대답이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 같아서 나도 물어보겠다. 자신이 일하는 곳의 풍경, 또는 집 말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의 풍경이 어떤가.
- 그 인터뷰를 봤는데 한강 작가가 일하는 곳의 풍경이 참 멋있더라. 저는 노무사 곧 노동 법률가라서 일하는 곳 풍경이 작가와는 다를 것 같다. 사무실(노무법인 ‘삶’)은 지하철 응암역 1번 출구 앞 오래된 건물 2층이다. 상담실 책장엔 상담 내용을 기록한 파일들이 가득 꽂혀 있고, 책상에는 지금 맡은 사건 자료가 쌓여 있다. 특히 자살 산재(산업재해) 사건 참고용으로 출력한 질병판정서 높이가 30cm다. 한 10년 전에 사무실을 옮기면서 옛날 사건 서류들을 많이 버렸다. 그때 종이 파쇄하는 차를 불렀다(대형 세단기를 탑재한 차량-필자). 서류 하나하나가 중요한 기록이라 아까웠지만, 공간을 너무 차지하니 어쩔 수 없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라. 평소 문학을 자주 읽는가?
- 평소엔 자주 못 읽는다. 수년 전 좀 시간이 나서 문학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다른 진보정당에 상근하다가 그만두고, 노무사 일에 집중하려는데 일이 많지 않아서 여유가 있었다.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때 읽었다. 그때 조정래의 ‘아리랑’과 ‘한강’, 박경리의 ‘토지’ 전권을 다 봤다. 어렸을 때 읽고 기억에 깊이 남은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다. ‘모모’에는 ‘시간 도둑’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청소년 시절 이 책을 읽고 인생을 쫓기며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최근에 한 번 더 읽고 딸에게도 추천했다.
공인노무사로 17년간 일했는데, 그처럼 노동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가?
- 실은 노무사가 된 후에 노동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20대에 학생운동을 마칠 무렵 무엇을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까 고민했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무사가 되면 전문 지식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여겨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노무사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에 더 깊이 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내 생각은 과거와 똑같지 않고 계속 변화했다.
노동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나?
- 예전에는 노동이 가장 중요한 가치고 노동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물론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노동에 매인 삶 그 자체는 문제라고 여긴다. 전엔 막연히 ‘노동 해방’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지금은 노동에 매인 삶에서 벗어나 각자 자기를 실현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노동 법률가뿐 아니라 진보정당에서도 여러 번 간부를 맡아 일했다. 정치 활동가 혹은 정치가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 노무사를 하기 전부터 정치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노무사가 되기 전에 사회운동, 정당운동을 먼저 했다. 어쨌든 사회를 바꾸려면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또 법·제도 개혁은 정치를 거쳐야 한다. 노무사로서 법률적 지식을 갖게 되니 정당 활동에도 도움이 됐다. 그런데 노무사 일을 열심히 할 때는 정치 활동에 집중하기 힘들고, 정치 활동을 열심히 할 때는 노무사 일을 잘하기 어렵다. 양쪽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
기본소득당에서 노동권 입법을 위해 일하다
21대 국회에서 용혜인 의원 수석보좌관으로도 일했고, 국회에서 노동 이슈에 관여했다.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던 이슈가 무엇인지?
- 의원실에 있을 때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쓰레기소각장, 하수처리장, 재활용분류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분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용 의원과 함께 노력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택배노동자, 경비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노동재해 국가통계 방식에 공무원, 교사, 선원의 재해가 빠져있는 것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은 그들의 재해 통계도 국가통계에 일부 반영되었다.
택배, 경비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일을 했나?
- 2020년 택배 노동자들이 연달아 과로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이 확대되며 택배 주문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택배 노조와 함께 택배 노동 환경을 조사했다. 의원실에서 노동부에 자료를 받아 보니 실제 과로사한 숫자가 노동조합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택배 과로사 방지 3법’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 택배원에게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제한하는 법안(즉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법안)은 통과되었다. 그전까지 택배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산재 가입을 안 해도 됐다. 이를 아주 예외적 경우가 아니면 당연히 가입하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한편 경비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그들의 과로사 비율이 일반 노동자보다 6~7배나 높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금은 당 최고위원이자 노동안전특별위원장인데,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노동 이슈는 무엇인가?
- 도시 열 수송관을 관리하는 지역난방안전 노동조합과 함께 안전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2018년 겨울, 고양시 백석역에서 열 수송관이 터져서 지나가는 사람이 화상을 입고 다치고 죽는 사고가 있었다. 파이프를 통해 뜨거운 물을 각 가정에 보내는데, 지하에 매설된 이 파이프의 노후 상태를 정기 점검해야 한다. 노동자는 물론 시민 안전과도 직결된 일인데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 얼마 전까지 공기업인 지역난방공사가 하청을 주고 그 하청회사가 또 하청을 주는 복잡한 구조였다. 지금은 하청업체들을 지역난방안전이란 회사로 모아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노동안전특별위원회에서 11월 2일에 ‘노동 안전 보건’을 주제로 강좌를 연다. 이때 열 수송관 관리 노동자들의 실태 증언도 있을 예정이다.
노동안전특위는 아리셀 화재참사 대응 등 주요 현안에도 연대하고 있는데.
- 주요하게 연대하는 활동이 세 가지다. 하나는 지난 6월 24일 대형 화재로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 활동이다. 참사 유가족이 용혜인 의원실에 찾아와서 만났고, 의원과 내가 화성시청에 찾아가 상황을 파악했다. 또 하나는 쿠팡 과로사 대책위다.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며 과로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정슬기님이 최근 과로사 인정을 받았다. 세 번째는 ‘권유하다 유니온’이 제안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없애기 활동이다. 노동자를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로 취급해 3.3% 계약을 맺는 일이 요새 늘어난다(근로소득을 사업소득 취급하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필자). 사용 종속 관계가 있는 노동자와 이런 계약을 맺는 건 불법이다. 노동부가 관리감독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셀 참사의 경우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구속되고 나서 상황이 어떤가?
- 박순관 대표가 구속되었으나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고 배보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10월 10일부터 유가족들이 아리셀의 원청인 에스코넥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사망자 23명 중에 18명이 외국인이다. 위험이 외주화를 넘어 ‘이주화’되고 있다. 아리셀 대책위는 한 건의 산재로 사망한 인원이 가장 많이 모인 대책위이다. 참사 유족들이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 아리셀은 아주 문제가 많은 회사다. 군납업체인데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비리 정황이 있다. 노동, 안전뿐 아니라 국방까지 여러 문제가 걸쳐 있다.
기본소득과 노동은 어떻게 만날까
기본소득과 노동 문제는 어떻게 만나야 되는가?
- 자활후견기관은 차상위계층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곳이다. 이 기관을 통해 편의점이나 커피숍에 취업한 사람에겐 사용자가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하라고 하면서 노동자로 인정 안 한다니 모순 아닌가. 차라리 어떤 일을 하든 기본소득을 조건 없이 주는 것이 낫다. 한편 경비노동자들은 한 70, 80세까지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는 한다. 이들은 일하며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노년까지 노동에 매인 삶이 과연 자발적 선택일까? 아닐 것이다.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으므로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을 요구하지만, 프랑스에선 오히려 정년 연장 시도에 싸우며 파업한다.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복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서 노년 노동을 강제로 안 하도록 만드는 게 낫다.
과로사를 줄이는 일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안다. 한국의 과로 문제는 얼마나 심각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 ‘노동시간을 안 지켜도 된다, 아무 문제 없다’고 여기는 게 한국 사회의 문제다.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지 20년이다. 제도 도입 당시 노동부는 행정 해석으로 68시간까지 일 시켜도 된다고 했다. 2018년에 와서 주 52시간 상한제가 만들어졌다. 장시간 노동을 방치하다 보니 과로사로 이어진다. 과로사는 일본, 대만, 한국 정도에만 있는 현상이다. 다른 나라는 과로할 만큼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일본에선 10여 년 전 과로사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작년(2023) 12월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과로사 방지법에 관한 입법 공청회를 했다(입법은 하지 못했다). 21대 국회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면, 22대 국회는 과로사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업무상 사고로 죽는 일을 막는다면, 업무상 질병 가운데 가장 많이 죽음에 이르는 과로사도 막아야 한다. 과로사 방지 노력을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로 만들고 기업에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소상공인, 자영업자다. 그들이 일을 적게 하면서도 삶이 유지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의 과로를 줄여주는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 기본소득 도입도 그 시스템의 일부다. 또한 자영업자의 노동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4시간 영업을 스스로 감당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택시의 경우 의무휴업제로 노동시간을 조절한 적도 있다. 그리고 자영업자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선택 사항인데 선택을 잘 안 한다. 보험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국가, 지자체가 자영업자와 보험료를 같이 부담해야 한다. 지금 자영업 폐업률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사회보험의 의무 적용 같은 조치가 있어야 사회가 조금 더 안정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임기 반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노동의 관점에서 현 정권을 평가하면?
- 최악의 정부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보장의 권리를 침해한다. 실업급여, 산재보험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조롱하고 억압하여 자기 검열하게 만든다. 지금 임금 체불이 역대 최고다. 노동자에게 주던 것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정부가 기업에게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임금 체불 방지법을 통과시켜도 행정부가 제대로 안 하면 소용이 없다. 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행정 권력으로 노동권을 침해한다. 단체협약을 개정하라면서 노조를 압박하고,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는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플랫폼노동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사회보장을 어떻게 더 넓힐지 모색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가고 있다.
긴 인터뷰 감사하다. 항상 바쁘게 사는데 취미가 있나? 등산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요새도 산에 자주 가는지?
- 1994년 대학에 들어간 해 가을에 화장실에 붙은 동아리 광고를 봤다.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동아리였다. 동아리에 가입했고 정말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새해 일출을 본 일이 기억난다. 20대 후반에 강원도 원주에 살 때 혼자서 원주 치악산에 자주 올랐다. 40대에 혼자 지리산 종주를 해봤는데 죽는 줄 알았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더라. 내가 사는 은평구 서쪽에 봉산, 그 위에 앵봉산이 있고 북쪽에 북한산, 동쪽에 백련산이 있다. 은평구를 둘러싼 작은 산이라도 자주 가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