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개악’으로 가는 선거제 개편 논의_신지혜(기본소득당 대변인)
‘개악’으로 가는 선거제 개편 논의
신지혜(기본소득당 대변인)
2022년 하반기 국회가 구성되면서 다시 ‘정치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2024년 총선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법정 기한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21대 국회 하반기 의장인 김진표 국회의장은 선거제도 개혁을 이루고 개헌까지 해보자는 큰 그림도 그렸다.
소선거구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사표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이유였다. 국민의 의사가 국회 구성에 녹아나게 비례성을 높이고 양당 독식이 아닌 실질적인 다당제로 다양성 있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이 취지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를 실시했지만, 위성정당 출현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미완으로 끝났기에 다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은 선거제 개편을 상임위원회에서 먼저 논의해 본회의에서 결정하는 방식 대신 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3월 23일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할 3개의 안을 확정됐다. 3개 안은 △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 +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 현행 소선거구제 +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그러나 세 가지 이유에서 이번 선거제도 개편안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현 선거제도 개편안이 ‘개악’인 이유
첫째, 의원 정수 확대가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발생하는 사표를 국회 구성에서 만회하는 방안이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하는데 현행 지역구 의석은 줄이기 힘들다면, 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의원 정수 확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치개혁특위 결의안을 뒤엎었다.
기시다 총리 선거운동을 한 것과 다름없는 한일외교, 과로 촉진하는 주69시간제 근로시간 개편안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진 국민의힘이 국면 전환을 위해 정치혐오를 이용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낮은 점을 이용해 선거제도 개악의 문을 열었다.
둘째, 중대선거구제는 정쟁에 집중하는 고인물 정치를 강화한다.
한 사람만 선출하는 소선구제에서 사표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중대선거구제가 제시됐다. 하지만 한 선거구에서 선출정수가 7인 이하인 경우엔 중대선거구제는 거대양당이 독식하는 국회를 바꿀 대안이 아니다.
사표를 발생시키는 소선구제는 단점이 많지만 장점도 있다. ‘심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 다수당으로 만들지, 정부를 견제할 야당을 키워줄지 선거 결과로 판가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판가름하는 기준은 과반 의석 확보 여부다.
하지만 충분히 많은 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가 아니라면 총선의 심판 기능은 사라지고 거대양당이 사이좋게 당선될 가능성만 높힌다. 양당 독식 국회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선거에 한해 3인 이상 5인 이하로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를 시범 실시했는데, 시범 선거구 109명 당선자 중 소수정당 후보는 4명뿐이었다. 이 결과만 봐도 중대선거구가 양당 독식 의회를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거대양당 후보는 출마만 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당의 공천이 된다. 지금도 공천을 받기 위해 공천권 가진 이들에게 줄서기 정치가 횡행한다. 민생보다 정쟁 실력이 뛰어나야 당내 공천 가능성이 커진다면 어느 정치인이 정쟁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소선구제처럼 민심의 심판도 받는 것이 아니니 민생 정책보다 당내 줄서기 잘하는 정치인의 재선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중대선거구의 당내 공천 과정을 불신하는 국민을 위해 제안된 것이 개방형 명부다. 소속 정당뿐만 아니라 후보도 선택하게 하자는 제안이지만 이 역시 소수정당이나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제도다. 개방형 명부는 인지도 높은 정치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송이나 구독자 수가 많은 유튜브에 자주 출연해 거대양당 입장을 대변하는 소수의 정치 패널이 개방형 명부의 큰 수혜자가 된다. 거대양당이 더 많은 의석 확보를 위해 인지도 높은 후보를 내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방형 명부도 새로운 민생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보다 정쟁에 익숙한 고인물 정치에 더 도움이 된다.
셋째,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진입장벽만 높인다.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지역주의 완화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특정 지역에 오랫동안 특정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지역주의를 바꾸자는 것이다.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개악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정개특위 결의안에는 의석을 배분해야 할 최소 득표율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의 비례대표 의석 배분 최소 조건은 전국 3% 득표율이다. 소수정당 의회 진입의 봉쇄조항이라고도 한다. 별도로 의석 배분 기준을 명시하지 않는다면, 현행 47석의 비례의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눴을 때 한 석을 배분받으려면 13% 이상 득표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도 최소 기준을 현행 봉쇄조항 정도로 맞추려면 6개 권역인 경우 각 권역별 의석이 33석은 넘어야 한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 총수를 200석 이상으로 양당이 합의할 리는 없다. 지역구 선출정수보다 비례대표 선출정수를 적게 배정하는 경우, 의석 배분 최소 득표율을 정하지 않으면 봉쇄조항만 높아지게 된다. 국민의 지지를 사표로 만들지 않고 의회에 반영하는 방안은 비례대표제가 유일한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거대양당에 던진 표만 사표가 되지 않고 소수정당에 던진 표는 모두 사표로 만든다. 거대양당 독식을 막아 다당제를 실현하자면서 소수정당의 진입을 막는 어불성설 개악이다.
현재처럼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를 하면서도 지역주의 완화하는 비례대표 의석 배분은 충분히 가능하다. 거대양당이 비례대표 공천에서 지역주의 완화 기조를 분명히 하면 되는 것이다.
선출 정수가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도입 취지를 훼손한다. 비례대표 도입의 주요 취지는 다양성 확보다. 단순히 영호남에 양당이 서로 진출하는 것을 넘어 국회가 국민의 다양한 뜻을 대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층적 불평등이 깊어지는데 소수정당의 진입장벽은 높이고 비례대표 도입 취지를 지역주의 완화로만 좁힌다면, 외려 국회의 다양성이 축소되어 구성될 뿐이다.
‘개악’하느니 차라리 현행 제도를 고쳐 쓰자
사표를 줄여 비례성을 높이고 국민의 다양한 뜻을 대의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명분은 세 가지 ‘개악’안을 제시하면서 무너졌다. 거대양당 셈법에 따라 자기들의 독식 체제에 유리한 안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셋 중 어느 안이 결정되어도 ‘개악’인 것이다.
그러니 법정 기한을 넘기는 경우 이 세 가지 안을 토대로 공론조사를 해서 국민이 결정하게 하자는 제안도 무책임한 정치일 뿐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보다 더 나쁜 안 가운데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또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커질 것이다. 현 국회가 개악의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 뻔하다.
개선 아닌 개악을 하느니 차라리 현 제도를 고쳐 쓰는 게 현명하다.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이점이 없도록 개정하고, 비례대표 47석을 지역구 의석과 제대로 연동하고, 소수정당 봉쇄조항을 현행보다 대폭 낮추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국민을 닮은 다양한 국회의 구성에 아주 조금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