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가을호 (이슈 인커밍) 아동 기본소득법, 초저출생 인구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
아동 기본소득법, 초저출생 인구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
양지혜(용혜인 의원실 비서관)
국가 비상사태. 대한민국의 초저출생 인구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치를 찍었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통계청은 향후 50년간 한국의 인구가 약 30% 감소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라 망하는 수준”의 위기가 대한민국에 촘촘히 드리워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2주 단기 육아휴직 도입, 결혼세액공제 추가,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 기존의 지원을 조금 늘리는 생색내기식 정책에 머물렀다. 총력으로 대응한 것이 겨우 이 정도라면, 국가 수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지경이다.
초저출생의 핵심 원인은 아동에 대한 공적 투자 부족
정부는 ‘막강한 예산 권한을 가진 저출생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며 인구전략기획부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동시에 종합부동산세 폐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 0.1% 재벌가만을 위한 초부자감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초부자감세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는데, 초저출생 극복을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의 저출생 대책을 ‘속 빈 강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저출생의 핵심 원인은 아동에 대한 공적 투자의 부족이다. 대한민국은 OECD 최장 노동시간 국가이며, 자녀 1인당 양육비용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반면, 대한민국의 아동에 대한 공적 투자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OECD 국가들이 2019년 구매력지수(PPP) 기준으로 아동에게 연 5만 6,5000달러를 지원할 때, 우리나라는 그 절반 수준인 2만 9,000달러만 지원했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한국은 ‘일단 낳되 알아서 키우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기본소득당은 초저출생 인구위기에 맞서 미래를 되살리고자 「아동 기본소득법(아동수당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아동 기본소득법은 모든 아동에게 매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아동수당법 개정안이다. 8세 미만의 아동에게 월 10만 원을 지급하는 데에 그쳤던 아동수당 제도를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경제적 안전망을 보장하는 아동 기본소득으로 발전시켰다.
초저출생에 맞서는 국가의 역할은 아동 양육에 대한 보조적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는 양육 초기에 집중된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아동의 전 시기를 아우르는 공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아동 기본소득법」은 초저출생 인구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공적 지원의 출발점이다.
기본소득당이 「아동 기본소득법」을 발의한 이후, 국회에서도 아동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한 달 만에 「아동 기본소득법」 심사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출생기본소득 3법’을 발의해 아동 기본소득 논의에 힘을 실었다.
아래에서는 아동 기본소득법의 지향을 소개하고, 국회 안팎에서 논의되는 아동 기본소득에 대한 쟁점을 짚어보겠다.
경제적 지원을 넘어, 아동의 존엄을 보장하는 국가로
소득불평등이 출생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돈 때문에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소득 하위층은 상위층보다 출생률의 하락폭이 컸다. 2019년 출산가구 중 소득 하위층은 8.5%에 불과했다.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릴 자신이 없으면 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가혹한 현실이다.
아동수당을 지급받는 한 양육자는 매월 300만 원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애 때문에 쪼들리며 살아가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답한다.❶ 반대로 말하자면,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어야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꿈꿀 수 있다는 뜻이다. 양육자의 소득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초저출생 인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아동 기본소득법」은 모든 국민이 소득 걱정 없이 출산과 양육을 결심할 수 있도록, 아동 양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현금지원을 확대하고자 했다.
경제적 지원은 초저출생 해결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 전반의 인식과 제도를 전환해, 아동과 양육자가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아동 기본소득법」을 발의를 준비하면서 경제적 지원의 확대를 넘어 초저출생 대책의 전면적인 변화를 추동하고자 노력했다. 「아동 기본소득법」에는 국가가 모든 아동의 존엄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전환적 관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동 기본소득법」은 국회에서 발의된 아동수당법 개정안 중 유일하게 아동이 아동수당을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법안이다. 개정안은 14세 이상의 아동이 아동수당의 신청부터 수령까지 직접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동 기본소득의 의의를 양육에 대한 지원을 넘어, 아동의 경제적 역량 향상과 주체성 보장까지 확대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양육자와의 갈등이나 폭력, 학대, 분리 등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동이 점차 늘고 있다. 국가가 더 이상 아동의 존엄한 삶을 보장할 책무를 양육자 개개인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당은 「아동 기본소득법」에 아동의 자발성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직접지급 원칙을 포함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도 고루 지원하고자 했다.
매월 30만 원 아동 기본소득, 충분히 가능하다
아동 기본소득 도입을 이야기하면 지급 액수에 대한 우려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모든 아동에게 매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결코 무리한 제안이 아니다. 아동수당의 지급액은 제도를 도입했던 201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오르지 않고 동결되었다. 그간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초저출생 인구위기가 심화된 현실을 고려하면, 매월 30만 원 아동 기본소득 지급은 매우 상식적인 수준이다.
아동수당의 확대는 세계 곳곳에서 수십 년간 필요성과 타당성이 입증되어 온 초저출생 해법이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을 겪었던 다수의 OECD 국가는 아동수당 확대를 통해, 1.6~1.8명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OECD 국가 32개국 중 무려 19개국이 18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 등 아동 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들은 매월 30~40만 원 규모의 아동수당을 지급했다.
한국에서도 아동수당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다. 제21대 국회는 아동수당의 확대를 골자로 한 아동수당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아동수당 확대의 필요성을 밝혔고, 국회입법조사처도 현금지원의 사각지대인 8~17세 아동에게 아동수당의 지급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에 발표한 『인구 변화 대응 아동수당정책의 재정 전망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아동수당 수급 가구의 자녀 1명에 대한 월평균 양육비는 50만~70만 원이 28.6%로 가장 높았다. 또한 수급 가구가 희망하는 정부 월평균 지원 금액도 50만 원 전후였다. 이러한 통계는 초저출생 인구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을 잘 보여준다.
아동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도 충분히 가능하다. 연 15조에 달하는 부자감세만 철회해도 아동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주요 재정이 확보된다. 여기에 금융투자소득세 정상 시행시 확보될 세수 1.7조원을 더하고, 법인세율을 25% 회복으로 세수를 확보하면 필요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덧붙여 탄소세, 토지세, 횡재세 등 기본소득당이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교정 조세를 도입한다면 국민의 부담은 줄이면서 재정 여력은 더욱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동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소득당만의 주장이 아니다. 민주당의 ‘출생기본소득 3법’도 매월 20만 원의 아동수당과 매월 10만 원의 ‘우리아이 자립펀드’ 도입이 주된 내용으로, 기본소득당의 「아동 기본소득법」과 유사한 재정규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공적 지원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아이 자립펀드’는 국가와 부모가 매월 10만 원씩 적립해, 18세 이후에 한꺼번에 지급하는 기초자산 성격의 제도로 취약계층아동 자산형성사업인 디딤씨앗통장과 유사하다. 디딤씨앗통장 사업은 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해 아동 당사자가 수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아동의 여건에 따른 저축액 차이가 확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우리아이 자립펀드’가 이와 같은 한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아동수당 확대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아동 기본소득의 지급액을 확대하는 것이 아동 기초자산 제도의 보편적 도입보다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다. 제22대 국회가 아동의 공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합의 속에서,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깊은 토론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동 기본소득에서 전국민 기본소득까지
초저출생 인구위기는 단순히 ‘인구감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키우고 돌볼만한 여유가 사라진 각자도생의 현실을 보여주는 참담한 지표다. 삶이 안정적이고 불평등이 해소될 때에만 미래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수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에게 소득에 대한 걱정 없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고, 아동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아동 기본소득법」으로 촉발된 국회의 기본소득 논의가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본소득당은 1호 법안을 시작으로, 제22대 국회에서 기본소득 법안을 발의해나갈 예정이다. 기본소득은 급변하는 시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국가혁신의 패러다임이고,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기본소득 대한민국을 현실로 만들어낼 제22대 국회의 여정에 많은 당원 여러분들과 함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❶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3). 인구 변화 대응 아동수당 정책의 재정 전망 및 개선 방안. FGI 일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