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겨울호 (이슈 인커밍) 오세훈 서울시장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짓말
오세훈 서울시장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짓말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불법전대 해결을 위한 2024년 국정감사 기록 -
양지혜(용혜인의원실 비서관)
※ 용어설명
이 글에서 임차인은 서울시설공단과의 임대차계약을 통해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이하 ‘고터 지하상가’)의 점포를 임차한 자를 의미한다. 임차인은 직접 영업행위를 해야 하며, 「공유재산법」 제35조 등에 따라 본인이 임차한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임대해주는 전대차 계약을 해서는 아니 된다.
이 글에서 전차상인(전차인)은 임차인과 전대차 계약을 맺고, 고터 지하상가 내 점포에서 직접 영업행위를 하는 상인을 의미한다. 현재 전차상인은 본인을 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고 소상공인 지원 등 제도적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또한 전차상인은 임대료와 별도로 임차인에게 수백만 원의 경영이익금을 납부하며, 이중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전차상인들은 서울시설공단이 고터 지하상가의 운영을 위탁한 업체인 ‘주식회사 고투몰’이 전대차 계약을 주도하고, 부동산이 나서서 중개했던지라 전대차 계약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희는 유령상인이에요” - 서울시가 방치한 불법전대 피해 상인을 만나다
지난 7월, 용혜인 국회의원과 함께 고속버스터미널 지하도상가(이하 ‘고터 지하상가’)에 방문했다. 지하도상가에는 점포가 끝도 없이 줄지어 있었다. 아동복부터 그릇, 가방, 액세서리, 이불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같은 공간이었다. 평소라면 물건의 가격부터 확인했겠지만, 이 날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의 불법전대 방치로 인해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유령상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현민 씨(가명)는 고터 지하상가에서 90년대부터 장사를 해왔다. 오랜 시간 직원으로 일하다가 ‘내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로 임차인과 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부동산이 직접 중개하니까 믿을 수 있었고, 다른 점포들도 관례적으로 전대차 계약을 맺으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터 지하상가가 「공유재산법」 상 공유재산에 해당하며,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에 따라 전대가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전대차 계약 이후, 임차인의 갑질과 횡포가 시작됐다. 현민 씨는 매월 정해진 대부료의 3~6배에 달하는 경영이익금을 임차인에게 납부해야만 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일을 해도 빚이 생겼고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생계가 어려워져 소상공인 대출을 알아보다가 그제야 “왜 내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제야 불법전대의 부당함을 알게 됐다.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임차인의 횡포를 감내해야 했던 ‘유령상인’은 현민 씨만이 아니었다. 현민 씨가 동료들과 함께 조사한 결과, 624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의 점포가 불법전대 점포로 확인됐다. 다수의 임차인들이 실제 영업은 하지 않으면서 서울시설공단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액의 경영이익금을 챙기고 있었다. 심지어 서울시설공단과 계약한 수탁법인이 나서서, 불법 매매 계약을 주도한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고터 지하상가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불법전대의 고리를 끊고, ‘유령상인’으로 착취 당해온 전차상인들을 구제해야 한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통해, 불법전대를 방치해온 서울시와 시설공단에 제대로 된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지난 7월, 용혜인 국회의원이 고터 지하상가를 방문해 상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이유다.
우리가 만난 전차상인들은 공유재산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유재산은 시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공공의 재산이기에, 특정인이 영업권을 독점할 수 없다. 전차상인들은 “평생 영업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적게는 몇 년에서 많이는 수십 년간 겪은 불법전대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남은 수탁 기간만이라도 영업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불법전대를 방치해 피해를 키운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전차상인의 피해 회복을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호소였다.
현재 전차상인들은 불법전대의 피해자임에도 제대로 된 구제책이 없어, 피해 사실을 밝혔을 시 점포에서 쫓겨나야만 하는 상황이다. 전차상인이 두려움 없이 피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불법전대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기본소득당은 2024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차상인이 겪고 있는 불법전대 피해 사실을 밝히고, 서울시 차원의 책임 있는 해결을 요구하고자 했다.
“그럼 다 내쫓으라는 겁니까?” - 약자와 동행하겠다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변명
국정감사를 진행하기 전, 서울시설공단, 불법전대 피해 당사자들과 수 차례 면담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서울시설공단이 제출한 자료와 실제 점포 현황만 비교해도 불법전대가 만연한 현실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수탁법인과 법인에 소속된 임차인들이 저지른 불법·편법적 행위에 대한 제보도 쏟아졌다.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이토록 쉽게 파악되는 불법전대의 현장을 그토록 오래 방치해온 사실에 암담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기 초반부터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숱하게 약속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불법전대 문제야말로,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민생 현안이고 소상공인 생존권과 직결된 과제다. 매해 국정감사마다 불성실하고 불손한 태도로 논란이 되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지만, 이번만큼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정책적 논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질의가 시작되자마자, 이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터 지하상가에 불법전대가 만연한 사실을 “알고 있다”라면서도 “불법전대를 바로잡으려면 전차상인을 다 내쫓아야 한다, 그렇게 하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불법전대를 알고도 방치해왔으며, 전차상인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자백이었다. ‘약자와의 동행’을 약속한 서울시장이 약자를 인질 삼아 앞으로도 불법행위를 방관하겠다는 변명을 늘어놓은 순간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지만 전차상인을 도와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서울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전차상인 구제를 위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다. 전차상인의 수탁기간 내 영업권을 보장하려면, 서울시설공단이 고터 지하상가에 대한 전차상인과의 수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고터 지하상가와 같은 일반재산의 대부계약은 원칙적으로 수의계약이 불가능하다. 다만 「공유재산법」 시행령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내용 및 범위를 정한 경우’에 수의계약으로 추진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서울특별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조례」에는 수의계약에 대한 내용과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전차상인에 대한 수의계약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서울시가 조례 개정에 발 벗고 나서서, 전차상인 대상 수의계약을 위한 법리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가 마땅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국회가 해야 할 일도 존재한다. 불법전대는 단지 고터 지하상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 역시 「공유재산법」,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법」 등의 개정을 통해, 불법전대를 근절하고 전차상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도 기본소득당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짓말에 맞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국회 차원의 입법과제도 발굴해나갈 것이다.
“내 딸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요” - 전차상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이유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기본소득당 서울시당과 고터 지하상가 전차상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간담회에서 상인 분들과 재회했다. 첫술에 배 부르랴는 말처럼, 국정감사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정책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무거운 마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