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겨울호 (이슈 인커밍) 반복되는 여성 폭력,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여성 폭력,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기본소득당 여성위원장 김민아
지난 8월, 온라인 성범죄인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가 N번방 사건 이후 또다시 논란이 됐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의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합성 사진 또는 영상을 뜻한다. 딥페이크는 매우 사실적인 데 비해 제작이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에 사칭과 모욕 같은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타인의 얼굴을 도용해 성착취물 영상에 합성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바로 그중 하나다. 딥페이크는 얼굴 사진이나 특정 부위의 사진만 있어도 합성이 가능하고, 휴대폰 앱을 설치해 쉽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어 관련 범죄가 빠르게 양산되고 있다.
디지털과 온라인을 통한 불법 합성물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점점 심화되는 성범죄에 기술의 발전이 더해짐으로써 범죄 규모와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을 성희롱하는 단체 대화방의 운영자가 검거되었고, ‘겹지인방’이라는 이름으로 참가자들이 같이 아는 여성의 정보를 공유해 딥페이크 기술로 불법영상물을 제작·유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누나, 여동생, 엄마 등 가족의 모습을 촬영해 공유하는 텔레그램 단체방까지 확인돼 논란이 됐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학교와 가정 같은 일상 공간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때문에 피해가 확인된 피해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많은 여성이 불안을 느끼고 온라인 공간에 게시된 자신의 사진을 삭제 및 비공개 처리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가 ‘SNS 계정에 업로드된 개인 사진을 내려 피해를 예방하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과 피해자 개개인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동안 정부의 대응은 부실하기만 했다. 이에 여성들은 직접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 대응 집회를 개최하고, 딥페이크 성범죄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을 꾸렸다. 지난 11월 1일 강남역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이 주최한 9차 말하기대회가 열렸고, 참가자들은 “성평등 퇴행시킨 정부가 공범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변하지 않는 정부와 남성 중심 문화를 꼬집었다.
온라인 성범죄는 N번방 사건 당시 국가의 방관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윤석열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두고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지만, 여전히 이 범죄가 젠더 기반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성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면서도 성차별 해소를 위한 여성가족부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있으며, 텔레그램 본사의 수사 협조와 같은 실질적 대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국가의 역할이 시급하다
지난 8월, 불법 합성물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인 ‘딥페이크 봇’의 이용자가 장장 22만 명으로 집계되면서, 사회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딥페이크 봇’ 이용자 중 남성 비율은 98%, 그중에서도 10대 남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22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지인능욕’ 등 여성 멸시에서 기인한 성범죄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경찰과 국가가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경찰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고,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지난 9월, 국회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N번방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응급조치법’이 빠져있어 부족한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응급조치법은 경찰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 사업자에게 바로 아동 성착취물 삭제 및 접속 차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유포 범위가 넓고 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응급조치법을 통한 신속한 대응과 제대로 된 증거 확보 및 압수가 중요하다. 그러나 경찰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법 개정에 반대하며 책임을 회피했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를 옹호하며 결국 응급조치법이 빠진 채로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외교부도 마찬가지이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의 영상물은 해외 사이트를 기반으로 제작 및 유포되고 있어 국제 공조 수사가 불가피하다. 2022년 10월 경찰은 사이버범죄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 강화 방안 중 하나로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진전이 없다. 현재 66개국이 비준하고 있는 부다페스트 협약은 2001년 유럽평의회 주도로 출범한 최초의 사이버범죄 분야 다자간 협약으로, 협약국 간에 사이버범죄 해결을 위한 자료와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 외교부는 당시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추진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이버 공간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라고 발표하며 조속한 협약 가입을 약속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국무조정실에서 정부 합동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또다시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추진을 언급했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적극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고 있는 만큼 이번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것이다.
방심위 또한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 신고 및 정보는 매해 늘어가고 있으나 수사 의뢰 건수는 늘지 않고 있다. 방심위의 디지털 성범죄 정보 수사 의뢰 요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방심위는 올해 단 24건의 디지털 성범죄물만을 경찰청에 수사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불충분한 인력이다. 방심위 직원 1명이 디지털 성범죄물을 최대 8천 건씩 처리하고 있으며, 긴급 대응팀은 인원이 줄어든 상태다. 인력뿐 아니라 영상물에 대한 삭제 및 차단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찰 등의 유관기관과 충분한 협력을 하지 않는 방심위 또한 문제다. 지난 9월 여성가족부 딥페이크 성범죄 현안 질의에서는 방심위가 선점하고 있는 텔레그램 핫라인을 경찰과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텔레그램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수사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거대 범죄 집단의 딥페이크 불법합성물 유통 경로로 전락했다. 방심위는 한시라도 빠르게 경찰 등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텔레그램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여성가족부 산하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또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요청 건수는 165,095건으로 최근 5년간 무려 3.4배가 증가했다. 하지만 유포물 삭제지원, 유포 현황 모니터링 지원 등 피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예산 문제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디성센터의 삭제 지원팀에서 지난해 1명이 1년 동안 삭제한 자료는 1만 5천 건이 넘는다. 그러나 디성센터는 내년도 삭제 요청 업무 담당 인력을 39명에서 41명으로 고작 2명을 늘리는 데에 그쳤다. 게다가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지원 관련 내년도 예산을 올해 대비 2억 원을 삭감한 32억 6900만원으로 편성했다.
반복되는 여성 폭력,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포함한 온라인 성범죄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그 형태만 달라져왔을 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여성혐오 표현들이 넘쳐나고,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성적 요구를 하는 일들이 빈번하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영어 공부를 위해 원어민과 영어 대화를 할 수 있는 영상 통화를 시작했는데, 매칭된 미국인 남성이 세 번째 영상 통화 이후 개인 전화번호를 묻거나 성적인 질문을 해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를 차단하고 앱을 지우게 되었다. 온라인 여성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성 폭력은 소라넷, 버닝썬, N번방, 딥페이크 성범죄 등 여러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 폭력이 반복되는 이유는 1차적으로 범죄에 대한 가해자 처벌이 미미하고, 경찰의 대응이 미흡하기 때문이겠으나 국가와 현 정부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여성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국가 및 경찰의 적극적 대응, 제도적 전환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의 역할이 시급함에도 윤석열 정부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경찰청에서는 딥페이크 가해자 성별 수합도 하지 않고 있고, 지난 10월 교육부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교육 시 특정 성별을 지정해 피·가해자로 구분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의 수가 절대다수임에도 윤석열 정부가 딥페이크 성범죄 근간에 만연해 있는 성착취, 성차별, 강간 문화 등의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여가부 폐지 같은 정책을 내놓고 있으니 딥페이크 성범죄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온라인 스토킹에 기반한 불법합성물 제작 및 유포 사건 즉, ‘서울대 N번방’ 사건의 가해자에게 법원은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공범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관련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구형 선고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엄중히 처벌해 법과 도덕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리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난해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이 “페미니스트는 맞아도 된다.”며 짧은 머리의 여성을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의 판결문에는 처음으로 여성혐오를 비난할 만한 범행동기로 인정하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여성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몇몇 악마 같은 가해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22만 명이라는 가해자의 숫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근간에 존재하는 성차별적이고 성착취적인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전환과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