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Light 6월호 : 이재명 시대, 함께 기본소득 대한민국으로
이재명 시대, 함께 기본소득 대한민국으로
오준호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사명이 있는 나라』,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지은이
진짜 대한민국=기본소득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비로소 가능합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
내란의 터널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은 이재명 정부를 맞이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성장과 회복’으로 ‘진짜 대한민국’을 이루겠다고 꿈을 밝혔다. 그러나 새 정부 앞에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윤석열 정부 3년의 폭정, 그 결정판인 계엄 사태는 대한민국을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 위기의 배경은 어제오늘 시작된 건 아니다. 불평등·양극화, 기후위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등 사회가 서 있는 조건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구조적 위기와 전 정부가 일으킨 위기가 수채통의 머리카락처럼 얽힌 현실에서,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내란으로 망가진 민생을 살리고, 글로벌 경제전쟁을 헤쳐갈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과제인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혁신에 과감히 투자하고, 그 과실로 불평등·양극화를 줄여 사회 통합을 이뤄야 한다.
또한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대한민국 비전으로 ‘모든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기본사회’를 제시하였다. 선거 기간 이재명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 모두 존엄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노라 약속했다. 소득·주거·돌봄·교육 등 모든 영역에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국민의 ‘기본’을 지키는 사회, 그것이 기본사회이다.
기본사회로 가는 핵심 정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외부의 변화나 위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기본소득 없이,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기본소득당도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기본사회)의 비전을 ‘기본소득 대한민국’이라 부른다. ‘기본소득 대한민국’이 진짜 대한민국이다.
기본소득당은 이재명 정부가 ‘기본소득 대한민국’ 실현을 이끌 거라 믿고 협력할 것이며, 그 길에 주저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엄히 비판할 것이다. 아테네라는 커다란 말의 다리를 깨물어 달리게 만드는 ‘등에’로 자신을 비유한 소크라테스처럼, 기본소득당은 이재명 정부의 대한민국이 올바로 나아가도록 동반자이자 감시자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
이재명의 정치 이력과 기본소득 철학
그런데 당장 질문이 나올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연 기본소득 실현의 의지가 있는가?”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그 전 선거처럼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 같은 직접적인 기본소득 공약을 밝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이재명이 기본소득 정책을 접었다”라며 철학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소득 철학과 의지는 여전히 확고해 보이고, 대선 공약에도 기본소득의 취지를 분명히 녹였다고 평가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관되게 기본소득 비전을 제시해 왔으며, 실제 정책을 실행한 이력도 갖춘 정치인이다. 2016년 성남시장으로서 범주형 기본소득인 ‘청년배당’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은 국내 최초로 실행된 기본소득 정책이다.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모든 24세 청년이 연간 100만 원(분기별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받았다. “청년배당으로 3년 만에 과일을 사먹었다”는 후기가 화제가 됐을 만큼 청년 생활에 도움이 됐고, 소상공인의 매출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로 선출되자 청년배당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으로 발전시켰다. 2019년부터 경기도 만 24세 청년 전체 17만 명이 청년기본소득을 받았다. 정책을 시행한 해 도민 설문조사에서 수급자의 80%가 ‘만족한다’고 답했는데, 7년 차(2025)에 만족도가 94%로 증가했다(<경기도 ‘청년기본소득’ 하반기부터 도내 전역서 사용 가능> 한겨레, 2025.2.4.). 2019년 4월에는 국내외 기본소득 전문가들을 모아 기본소득의 이론과 사례를 발표하는 ‘경기도 기본소득 박람회’를 개최했다. 이틀간 수만 명이 방문한 이 행사는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를 결합한 ‘상생경제’ 실험을 전국에 알렸고, 기본소득 담론을 한국 사회의 주류 의제로 끌어올렸다.
경기도지사 시기, 이재명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기본소득이 제가 꿈꾸는 ‘공정 세상’과 만난다는 측면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사회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의 비중이 줄어든 상황, 소수가 과도한 초과이익을 차지한 상황 때문에 기존 시스템으로는 정상적인 체제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 불평등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체제가 붕괴됐다. 우리 사회도 그럴 수 있어서 새로운 제도 보완이 필요하고, 기본소득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부의 집중의 또 다른 문제는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거다. 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줄어든 대중에게 부를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 지속적 경제성장과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고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본다. (「계간 기본소득」 창간호, 인터뷰어 오준호, 2019)
장미의 다른 이름? ‘기본소득형’ 공약들
‘대선 삼수생’ 이재명 대통령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처음 출마했을 때부터 ‘전 국민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토지보유세를 걷어 토지배당으로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는 ‘국민 1인당 연 100만 원 기본소득’ 공약을 10대 공약의 하나로 발표했다.
윤석열 내란 사태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보편적 기본소득 공약을 선거운동에서 언급하지 않았고, 기본소득 지지자 사이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이재명 대통령은 “기본소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준비는 해야 한다”라며 의지를 보였다. 내란 사태 종식이라는 비상 국면, 건전한 보수 시민과도 연합해야 하는 현실에서, 아직 논쟁적인 기본소득 정책은 우선순위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공약을 묶어 ‘기본사회’라는 포괄적인 비전으로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설치를 약속하고, 기본사회 주요 공약으로 주4.5일제 도입, 공공주택 확대, 생애주기별 소득보장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소득을 포함해 여러 영역의 기본권 확보를 포괄할 것”이라 밝혔다(<이재명, ‘기본사회’ 구체화… “기본소득도 논의 대상”> MoneyS, 2025.5.22.).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기본소득 철학과 특징을 지닌 ‘기본소득형’ 대선 공약을 제시했다. △농어촌 주민수당(농어촌 기본소득) △햇빛·바람연금 확대(에너지 기본소득) △아동수당 18세까지 확대(아동·청소년 기본소득) 등이다.
이 대통령은 농어촌 주민 모두에게 월 15~20만 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농어촌 주민 소득을 보전하고 지역소멸을 막는 것이 목표다. 완전히 실시되면 전 국민의 1/5인 약 1천만 명이 기본소득을 받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본소득 정책이다. 또한 전남 신안군이 실시하는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도인 햇빛연금, 바람연금을 타 지역에 확대하기로 했다. 신안군 주민은 햇빛연금(태양광)으로 월 20만 원가량 소득을 얻으며, 바람연금(풍력)까지 실시되면 월 5-60만 원 이상 소득을 보장받는다. 햇빛연금, 바람연금은 공동자원인 재생에너지의 사업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에너지 기본소득’이다. 이 대통령은 모든 지역에서 주민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소득을 얻게끔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아동수당 확대는 저출생 대응과 인적자본에 대한 사회적 투자라는 점에서 사회적 수용성이 높은 공약이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여러 차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 지역화폐형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발생한 민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미 경험해 보았듯, 보편적 민생회복지원금은 내수를 진작해 소상공인을 돕고 지역경제를 살린다. 만약 민생지원금을 경기가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연 1~2회로 정례화한다면 이 역시 기본소득이다.
이 공약들은 기본소득 이름이 붙진 않았다. 하지만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향기가 그대로”라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처럼, 개별성과 무조건성의 기본소득 특징을 지닌 이 정책들은 기본소득의 기대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이 정책들이 제대로 실시되어 국민의 호응을 얻으면, 보편적 전국민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
그러면 이재명 정부가 기본소득형 정책들을 추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는 기본소득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국민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약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정교하게 짜는 것이다.
대선 기간 한국일보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실시해 공개한 ‘대선 공약 인식 여론조사’ 결과에서, 기본소득 공약의 찬성 점수는 100점 만점에 39점이었다. 이재명 후보 공약에 한정하면 공공의대 설립·공공의료원 확대가 71점, K-엔비디아 육성 공약이 69점이므로 기본소득의 지지는 상대적으로 낮다. 권영국 후보의 부자증세 공약이 71점을 받았으니 공약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각 자체가 보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에 대해 가지는 오해,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잘못된 비판이 기본소득 여론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
기본소득을 현실 정책으로 추진하려면, 사회적 논쟁의 지형을 살펴 국민이 우려하는 지점을 설득해야 한다. 현재 기본소득을 둘러싼 주요한 비판 담론으로 △선성장 후분배론 △물가 인상론 △선별복지 우선론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 비판 담론에 적극적인 대응 논리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래와 같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 쟁점 1. “성장이 먼저, 분배는 다음” : 선성장 후분배론
일각에서는 “경제의 파이가 충분히 커지기 전에 분배에 치중하면 성장에 해가 되고 지속 가능성이 없다”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시기상조로 본다. 먼저 성장을 통해 세수를 늘리고 국민소득이 높아진 다음에야 복지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 재원을 생산적 투자나 기업 지원에 써서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거나,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반론:
성장과 분배가 선후관계라는 이런 주장은 시대착오다. 부러움을 사는 서구 복지국가는 성장을 완성한 다음 복지국가를 건설하지 않았다. 스웨덴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에 사회적 타협으로 복지국가의 시동을 걸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 승리했지만 주요 도시가 폐허가 된 상황에 16세까지 주는 아동수당과 전 국민 무상의료인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 제도를 만들었다. 복지국가의 역사는 ‘선성장 후분배’가 아닌, 포용적인 분배를 기초로 놀라운 성장을 이룬 역사다.
IMF 등 국제기구들도 과도한 불평등이 지속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며, 분배 정책이 인적자본 축적과 사회 안정을 통해 중장기적 성장을 견인한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의 ‘먹사니즘’과 ‘잘사니즘’으로 설명하면, 먹사니즘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곧 성장을 뜻한다면 잘사니즘은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 곧 고른 분배와 보편적 복지를 뜻한다. 한국 경제는 오랜 대기업 중심 성장 전략 아래 양극화가 심화되고 내수 부족, 사회 갈등 문제를 겪고 있다. 늦기 전에 과감한 분배로 사회적 역량을 고루 키워내는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꺾는다는 주장도 실증적으로 반박된다. 올해 4월 발표된 독일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2021년-2024년) 결과에서,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에게 노동시장 참여율 하락이나 노동시간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본소득 수급자와 대조군 모두 참여자의 약 90%가 조사 시점에 주당 평균 40시간 일하고 있었다. (실험 결과는 ‘나의 기본소득Mein Grundeinkommen’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https://www.mein-grundeinkommen.de/pilotprojekt-grundeinkommen)
게다가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고 미래를 위해 교육을 받거나 창업에 나서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잘 갖춘 사회안전망이 혁신과 생산성의 향상을 뒷받침함을 시사한다. 성장 대 분배라는 이분법은 허구다. 아무리 윤석열 경제 실패와 내란으로부터 회복한다는 과제가 중요해도 자칫 ‘파이부터 늘려야 나눌 수 있다’는 성장 우선론에 경도되어선 안 된다. 오늘날 지속 가능한 성장은 기본소득 같은 과감한 포용 정책과 함께 가야만 이룰 수 있다.
□ 쟁점 2. “기본소득 지급하면 물가가 오른다” : 인플레이션 우려
기본소득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비판은 물가가 따라 오른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주면 유동성이 급증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민생고가 가중된다”라는 주장이다. 보수적인 정치인과 언론은 기본소득 때문에 생필품 가격이 올라 결국 혜택이 상쇄될 거라며 ‘돈 풀기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반론:
이처럼 막연한 인플레이션 공포는 기본소득의 실제 메커니즘을 오해한 것이다. 우선, 기본소득 재원을 조세로 조달하는 ‘조세형 기본소득’의 경우는 물가 인상 요인으로 지목되는 통화량의 고삐 풀린 증가와 상관이 없다. 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한쪽에서 세금을 거둬 다른 쪽에 이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수요 급증보다는 분배 구조의 개선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기본소득 지급에 따른 수요 증가는 주로 저소득층의 필수 소비 증가인데, 이 분야는 대체로 공급 탄력성이 높아 무리 없이 수요에 맞출 수 있다. 실제 한국의 제조업 생산 가동률은 평균 70% 정도다. 경기침체 때문에 생산설비 열 대 중 세 대가 노는 셈이다. 이 평균치조차 가동률 높은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거라서 실제 소비재 제조업 가동률은 더 낮다. 이럴 때 저소득 가구가 기본소득이나 민생지원금을 받아 식료품 등 생활 소비를 늘리면, 해당 산업은 유휴 설비를 돌려 상품을 원만하게 공급할 것이므로 물가가 치솟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셋째, 여러 나라의 현금지원 실험을 보면, 물가 상승이 있더라도 일시적이었고 오히려 거시경제 안정에 기여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APFD)에 대한 2022년 미 시카고대의 연구(존스, 마리네스쿠)는 “APFD와 인플레이션 사이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라고 밝혔고 도리어 APFD가 지역의 경기침체를 완충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알래스카 물가 인상률은 APFD가 실시된 1982년 이전에는 미국 평균 물가 인상률보다 높다가, 배당 지급 후에는 장기적으로 미국 평균과 비슷하거나 낮았다. 고물가가 지속된 2023년에도 알래스카 물가 인상률은 1.5%로 미국 평균 4.1%의 절반 이하였다(Alaska Economic Trends, 2024.4.). 그러므로 기본소득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는 우려는 과장된 것이다. 재원 마련 방식과 지급 수준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 쟁점 3. “그 재원으로 취약계층 두텁게 지원해야” : 선별복지 우선론
복지정책을 둘러싼 오랜 논쟁인 ‘보편 vs 선별’ 문제에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한정된 복지 재원을 굳이 모두에게 뿌릴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 50조 원을 들여 전 국민에게 1인당 100만 원씩 주기보다 저소득층에게 1인당 500만 원씩 주는 게 빈곤 감축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금을 거둬 부자에게도 주는 기본소득은 비효율적 낭비라며 취약계층 선별지원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반론: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이 곧 취약계층 복지를 축소시킨다는 논리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를 필연적 결론처럼 여기는 논리 비약일 뿐이다. 증세를 통해 부자들이 더 많이 비용 부담을 하게 하면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도 취약층도 더 두터이 보호할 수 있다. 반면 취약층에 집중하자는 주장은 대개 ‘재정 절감론’에 발목이 잡힌다. 윤석열 정부는 보편복지는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며 ‘약자 복지’를 주장했지만, 실제 복지지출을 보면 그저 ‘약한 복지’였다(문재인 정부 사회복지 지출이 연평균 10% 이상 증가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연평균 6%대 증가에 그쳤다)(‘감세와 복지재정, 가구소득 및 소득 불평등과의 관계’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감세의 그늘, 복지재정의 길을 묻다> 토론회 자료집(2025.6.13.)). 중요한 것은 복지의 총량을 늘리고 그 비용을 함께 더 내자는 사회적 합의이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가 수월하다.
그럼 우리나라에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을 위한 증세의 여지가 있을까? 물론이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을 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OECD 34개국 중 33위이다. 거의 꼴찌다. 이는 한국의 조세부담율이 낮아서 그렇다. GDP 대비 조세부담율을 현 17%대(2024년. 윤석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진 결과)에서 OECD 평균 수준인 GDP 대비 25%(2023)로만 높여도 전 국민 월 30만 원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월 30만 원 기본소득에 드는 재정은 연간 180조 원이고, 한국과 OECD 평균 조세부담률 간 격차는 약 200조 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정적 효율성을 앞세워 선별복지를 지지하는 입장은, 선별복지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외면하고 있다. 선별복지 체계에선 피수급자의 낙인 효과와 사각지대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선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 상당수가 탈락하고 있다. 대선 기간 ‘익산 모녀 사망 사건’은 선별복지 체계의 사각지대와 신청주의에서 비롯한 약자의 비극이 되풀이된 거였다. 이러한 비극을 끝내려면, 필요한 사람을 놓치지 않고 받는 사람에 낙인찍지 않는 기본소득을 빨리 논의해야 한다.
이재명 시대, 기본소득 본격화를 위해
이재명 정부가 기본소득형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입법 그리고 공론화가 필요하다. 아래는 그 방법에 대한 제안이다.
□ 햇빛·바람연금 제도화
햇빛·바람연금과 같은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는 주민 소득 보장이라는 차원 말고도 국가 목표인 2050 탄소중립에 필수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주민 수용성이다. 주민들이 삶터 가까이 태양광·풍력발전 설비가 들어서는 것을 받아들일 때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데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가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풍력발전 사업은 초기 설비투자 규모가 크고 설치 시간도 길어 초기에 정교한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햇빛, 바람, 땅, 바다라는 사회적 공유부(commons)에서 나온 수익을 시민과 공유할 것을 명시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풍력발전 산업 선진국 덴마크는 2020년 ‘재생에너지 촉진법’에 해상풍력 발전사업 사업자가 정부에 지분 20%를 의무적으로 할당하도록 했다. 공동자원인 바람을 이용하는 기업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에 일정한 지분을 무조건 줘야 하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내용을 담은 ‘재생에너지 이익공유법’이 필요하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사업자는 정부에 일정 지분(공공지분)을 제공하게 해야 한다. 공공지분의 수익 몫에서 절반은 전 국민 에너지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남은 절반은 지자체별 햇빛·바람연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이에 관한 법안 발의를 기본소득당은 준비하고 있다.
□ 농어촌 기본소득 단계적 도입
농어촌의 보호 가치는 식량주권, 탄소중립, 생물다양성의 중요성과 함께 커지고 있다. 농어촌은 도시민의 향수나 정감을 자극하는 공간을 넘어 ‘생태전진기지’로서 재인식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농어촌 기본소득은 주민의 기본 삶을 보장하고 인구를 유지하여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정당한 정책이다. 현재 도농 가구의 소득 격차가 연 3천만 원에 이르므로, 농촌에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려면 격차의 최소 절반은 국가가 보완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각종 직불제의 확대를 전제하더라도, 농어촌 기본소득 목표는 1인당 월 3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 이를 농촌 인구 약 945만 명에게 지급하면 연간 34조 원이 든다. 재원은 균형발전특별회계 중 일부, 지방소멸대응기금 등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제도를 인구소멸 위기 지역부터 도입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면 시작 예산은 적게 들 것이다. 무엇보다 ‘농어촌 기본소득법’을 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 아동·청소년 기본소득과 청년 기본소득
기본소득당은 2024년에 현 아동수당을 18세까지 확대하고 금액도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기본소득당은 이를 아동·청소년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제도의 목표는 우선 출산과 양육의 선택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없게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출산율 하락 폭은 소득 하위층에서 가장 크다. 여유롭게 키울 자신이 없으니 아예 출산을 포기하고 만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출산과 양육을 택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요청된다. 우리처럼 저출산 문제를 겪은 다른 선진국들은 포용적인 아동수당 등 공적 지원을 늘림으로써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또 다른 목표는 아동·청소년의 시민권 강화를 위해 그들의 경제적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당의 법안은 만 14세부터는 기본소득 수급과 사용에서 아동·청소년 주체의 선택권을 보장한다. 양육자에게 돈의 관리를 맡길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아동·청소년 본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아동·청소년 기본소득은 정당 간 공감대가 있는 정책인 만큼 인구 위기 대응의 ‘골든아워’ 안에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대선 공약에는 없지만, ‘청년 기본소득’은 충분히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와 경기도에서 이미 실행한 바 있고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사회적 정당성도 충분하다. 우리나라처럼 사회 진출 연령인 19세 이상 청년층을 ‘무복지’ 상태에 내던지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많은 나라에서 아동수당을 19세 이후로도 상당 기간 지급하거나 학업·생활·주거비 명목의 현금수당을 청년에게 제공한다. 이런 사회적 지원이 없으면 청년 세대의 미래 진로는 그가 금수저인지 아닌지, 곧 부모의 재산에 좌우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청년 기본소득을 전국 24세 청년 약 60만 명에게 넓혀 연 100만 원 지급해도 재정은 연 6천억 원이다(5년이면 3조 원). 이재명 대통령 공약 전체 재정이 210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그 2%도 안 되는 돈을 청년에게 못 쓸 이유가 있을까? 19-24세로 대상을 넓혀도 연 3.5조 원 남짓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생애주기별 소득보장을 공약했다. 그 핵심에 아동부터 청년까지 촘촘한 기본소득 제도를 두자.
□ 기본소득 공론화위원회
기본소득처럼 사회경제 구조의 큰 변화를 수반하는 정책은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필수다. 21대 국회에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기본소득 공론화법안’을 발의했고, 22대 국회에 재발의했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1년간 전국 권역별로 시민 숙의토론을 실시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이다. 시민 숙의토론에선 기본소득의 효과, 설계 방식, 재원 마련 등을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공론화 결과는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다.
기본소득을 당장 도입할지, 어느 수준으로 도입할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아래로부터 공론화를 거치자는 데는 공감대가 넓다. 또한 커다란 사회개혁 방향을 국민의 토론으로 정하는 것은 민주적으로도 정당하다. 이재명 정부도 기본소득 공론화 의지를 보여주고, 22대 국회가 법안을 빨리 처리하자. 이와 함께 이재명 정부는 공약한 ‘기본사회위원회’를 서둘러 설치해야 한다. 기본사회위원회와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가 협력하며 국민의 지지 기반을 넓힌다면 기본소득·기본사회 정책 도입은 더 빨라질 것이다.
기본소득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국민은 ‘성장과 회복’을 내건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런데 국민의 선택을 ‘성장우선주의’라는 낡은 개념과 같은 것으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 “성장이 먼저고 기본소득 같은 분배는 나중”이라는 선후관계에 빠지는 건 더더욱 큰 오류이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지속 가능한 성장과 대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왜 그런가? 기본소득은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구조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을 변화시킨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한 조건의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기업은 일할 사람을 붙잡으려면 더 나은 근로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전체 노동환경 개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창업과 자기계발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도 참가자들이 기본소득 덕분에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거나 창업에 나섰다고 보고했다.
둘째,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진다. AI와 자동화로 전통적 일자리가 줄어드는 노동의 대변혁 시대에 기본소득은 필수 불가결한 안전망 노릇을 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실업과 소득 감소의 불안감을 낮추면 사람들은 기술 변화에 더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혁신의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을 연구한 독일경제연구소가 기본소득이 ‘사회적 도약대(social launchpad)’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 이유다. 실험 참가자들은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직업을 바꾸거나 추가 교육에 도전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셋째, 사회적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완화하여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 범죄율 감소나 건강 개선으로 이어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 2017-18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기본소득 수급자들이 ‘정부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투표 참여율이 비수급자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았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 외부 효과로 작용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한다. 종합하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전략의 일부다. 인적자본 강화, 사회적 안정, 혁신역량 제고를 통해 성장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가들조차 “보편적 기본소득은 창의와 기업가정신을 촉진할 것”이라고 옹호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가 ‘성장과 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기본소득의 이런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선제적 대응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과 내란은 공동체의 기초를 허물었다. 그렇다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그대로 다시 써서 새집을 지을 순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기둥과 지붕 모두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의 굴레를 끊고, 혁신과 포용이 공존하며, 국민 모두의 존엄한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나라.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그 중심에는 기본소득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형 공약을 구체적 현실에 뿌리내리게 만들고, 이를 확장하고 연결해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로 발전시키자. 이재명 정부의 용감한 도전, 국민의 참여, 기본소득당의 정책 역량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 곧 ‘기본소득 대한민국’이 다가오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기본소득당 계간지가 더욱 가벼워진 '인커밍 Light'로 돌아왔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 속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시사평론을 담아 선보일 '인커밍 Light'를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