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용혜인 상임대표 SNS 게시글 - 20231109 노란봉투법이야말로 민생경제 살리는 법입니다
《노란봉투법이야말로 민생경제 살리는 법입니다》
노란봉투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노란봉투법에 찬성 표결을 하면서 문명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던 손배·가압류 폭력에 스러져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상실과 해체의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8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노란봉투법의 철회를 국회에 요청했듯, 노란봉투법의 운명은 다시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노란봉투법이 죽어가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임을 호소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훼손된 사회정의와 헌법정신의 회복을 거부하는 것임은 물론, 윤석열 정부 아래 국가 부도를 염려할 정도로 죽어가는 우리 경제를 더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은 대공황 이후 미국의 뉴딜 정책을 통해 86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1936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한 전국노동관계법, 일명 와그너법에 이르러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권을 보장하고, 부당해고, 어용노조, 차별 대우를 금지했습니다. 최저임금제와 주 40시간 노동제도 이때 함께 도입되었습니다. 와그너법과 뉴딜 정책에 의해 노동조합의 수와 노조 가입률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개된 경제 상황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뉴딜 정책의 핵심으로 삼았겠습니까? 미국이 갑자기 노동자 국가로 변신이라도 한 것입니까? 미국 민주당이 갑자기 노동자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속가능한 경제로 관리하는 데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가 180도 태도를 바꾸는데 작동한 경제 논리가 바로 케인스주의의 유효수요 개념이었습니다. 유효수요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함께 노동자들 시장 소득의 증가, 즉 임금 인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임금 인상이 일어나려면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이 높아져야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권리로서 보장하여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인 것입니다.
저는 노란봉투법을 21세기에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박한 형태로 재탄생한 와그너법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무겁게 억누르는 손배·가압류를 적절히 제한함으로써 그만큼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높일 것입니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가계의 유효수요를 확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경제에 왜 유효수요 확대, 특히 가계 부문의 유효수요 확대가 절실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명목 GDP에서 민간의 최종소비지출, 즉 가계의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기준 48%입니다. 2012년 51.3%에서 더 떨어진 상태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 비중이 65~70% 사이에 있으며, 일본도 54% 수준입니다. 우리와 같은 수출 주도 국가인 독일도 이 비중이 50%를 넘습니다.
이 수치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에 있어 유효수요의 제약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저성장 경제로 가는 과정의 부정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필요 최소한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 가계의 유효수요를 높이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민간 유효수요 확대는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전 모델인 수출 주도 성장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수준의 전략적 중요성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비춰 더욱 정당성을 얻습니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이 고용을 통한 임금소득의 증대,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던 시기는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여기에 글로벌경제가 자유무역 세계화에서 미‧중 사이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촉발된 일련의 보호주의적 질서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미 상당 부분 유실된 수출 부문의 국내 낙수 효과를 더욱 위축시킬 것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수출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법인세율을 내리고, 국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10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은 올해 7월 제조업 설비투자가 전월 대비 8.9% 감소해 10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보고합니다.
낙수 효과의 붕괴와 함께 수출 산업의 안정적 성장 자체도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진 상태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수출 주도형 모델로 성공했던 대표적인 국가인 독일 경제의 추락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독일의 제조업 기술력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지만 글로벌 대외 여건 변화의 직격탄을 맞아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수출은 14% 감소했고, 2분기와 3분기에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경제 모델은 수출 경쟁력을 위한 상대적 저임금,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에 대한 금기시 등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환경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독일처럼 악화된 수출 환경과 대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경제에 수출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내외 상황을 종합하면 수출 대기업의 실적 향상에만 국가적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은 우리 경제를 더욱 위기로 몰고 가는 어리석은 관성일 뿐입니다. 이는 2017년 전 세계 수출량의 3.2%를 차지했던 한국의 위상이 2022년 2.8%로 낮아진 현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제 수출과 내수의 새로운 균형의 무게 중심을 내수로 더 이동시켜야 합니다.
가계 유효수요 확대의 필요는 당분간 지속될 고금리 전망에서도 확인됩니다.
한국의 금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채권 시장의 동향, 최근 다시 상승세를 탄 국내 물가를 고려할 때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계청 3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계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0.9%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대출 이자가 포함되는 비소비 지출은 2.6% 증가했습니다. 이자 비용의 증가로 인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소득 증가액의 절반도 안 되는 0.4% 증가에 그쳤습니다. 이는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계속되면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을 압박해 민간의 유효수요를 더욱 제약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는 사용자를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장합니다.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요구할 힘이 커지면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고, 노동자의 향상된 임금이야말로 가계의 유효수요를 높이는 가장 크고 직접적인 효과를 낼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원청 대기업 및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었던 과실이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도 적절히 이전되는 효과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에 특유한 수직적 원하청 구조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할 길이 사실상 막혀 있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 대기업이 손배·가압류라는 잔인한 보복의 칼을 휘두르는 것을 일정하게 제약함으로써 원청과 하청 사이의 합리적 자원 배분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 제고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다른 경로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임금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시장에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입니다.
일자리 자체가 희소재가 되면서 모든 나라의 정부들이 일자리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기업에 대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정 지원의 결과 한계기업들이 계속 연명하면서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을 잡아먹는 부작용 역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높아진 협상력은 저임금과 질 낮은 일자리로 연명하는 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을 일상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높아진 교섭력을 경유하여 최종적으로 가계의 유효수요를 높이는 방식으로, 한국 경제의 경착륙을 방지하고 저성장 체제로의 연착륙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노란봉투법은 국민경제에서 수출 비중의 구조적 하락과 수출 여건의 불안정성 증대를 강화된 내수를 통해 대체하고 완충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이 단지 훼손된 사회정의와 헌법정신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우리 경제의 건강한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제가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자칭 보수세력은 임금이 노동 생산성의 반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임금이 낮은 것은 노동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생산성 임금 이론입니다. OECD 통계만 보더라도 이는 간단히 반박됩니다.
시간당 부가가치 생산량으로 계산한 한국의 노동 생산성 지수는 2015년 100.0에서 2022년 121.3으로 7년 동안 연평균 2.8% 증가했습니다. OECD 국가들 안에서도 수위권에 들어가는 실적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연평균 2.2% 증가했습니다. 임금 인상이 노동 생산성 향상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노동 생산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에 맞서 자신의 생산성에 적합한 임금을 요구할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을 한 결과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거나 가족 전체의 패가망신이라면, 그런 나라에서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협상력이 적정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생산성 임금 이론을 신봉하는 보수세력이 노란봉투법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을 진지하게 믿는 보수세력이라면 노란봉투법 제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오늘 검찰권력과 언론장악이 민생경제보다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하명에 따라, 그들 스스로 오인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경제관을 국민에게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했습니다. 권력 추종이 그들의 세계관을 잠식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께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노란봉투법이야말로 ‘경제살리기’ 법입니다.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경제살리기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권한일지언정,
그 어떤 국민도 대통령에게 민생경제를 파탄낼 권한을 준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민과 국회가 수개월, 수년을 고민해 통과시킨 법안을 다시금 가로막는다면, 그 후과는 오롯이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민생을 살리겠다, 국민의 뜻이 늘 옳다는 말이 진심이었다면,
막무가내 거부권 행사 중독에서 벗어나십시오.
2023년 11월 9일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용 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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