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오늘, 결국 거대양당과 김진표 국회의장의 밀실합의의 결론이 병립형 퇴행으로 가닥을 잡아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절망적인 소식이지만, 아직 이 거대한 퇴행을 바로잡을 시간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오늘 이곳 로텐더홀에 섰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 20대 국회가 촛불이 요구한 정치개혁을 담아내기 위해 격론에 격론을 펼쳐 도입했던 제도였습니다. 힘겨운 논의와 시행착오가 이어졌지만, 그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바로 국회의 다양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촛불로 심판한 정당, 국민이 탄핵한 대통령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단 하나의 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가 그 원칙과 방향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안도,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관련 연구자들의 제언도, 제21대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힘겨운 논의의 방향도 이와 같았습니다.

전원위원회 이후 국회가 직접 진행한 국민공론조사의 결과 역시 다양성과 비례성을 강화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고인물 정치를 바꾸고 정쟁을 넘어 비전경쟁하는 여의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다당제 정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의힘을 제외한 모든 제정당이 이야기해왔던 ‘상식’입니다.

제20대 국회가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퇴행으로 물러서는 명분이 되어선 안 됩니다. 부족한 부분을 정치개혁의 취지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제도 자체를 형해화하겠다는 결정은 결국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며 국민의힘만 반가워 할 퇴행에 불과합니다. 즉 위성정당을 이유로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벼룩 잡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될 것입니다.

밀실야합으로 누더기가 된 선거제도 개혁 논의, 다시 원칙과 상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민의를 온전히 구현한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 뚜렷한 원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국민을 대의하기 위해 여기 모인 우리가, 국민의 뜻을 받아안아 선거개혁을 완수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입니다. 민주당이 선거제도 퇴행에 합의해주지 않는다면, 병립형 회귀는 불가능합니다. 즉 선거제도 개혁을 민심의 뜻을 받아안아 제대로 완수할 것인가, 혹은 촛불 이전의 퇴행을 택할 것인가의 키는 온전히 민주당에게 있습니다.

불과 지난 화요일, 민주당은 ‘강도높은 혁신’을 결의하며 ‘양당독식 완화∙비례성 강화∙소수정당 원내진입 뒷받침 등 3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국민의 뜻이 온전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겠다’ 국민께 약속했습니다. 부디 오늘의 의원총회에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반공이 국시’라는 여당과 손잡고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개혁으로 무장한 야4당의 공조를 더욱 강화합시다. 국민의 뜻을 원칙으로 삼아 보다 과감한 개혁에 나섭시다. 그렇게, 함께 퇴행의 시대를 끝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