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여름호 (기고) 22대 총선을 돌아보며 - 진심을 담아 대구 시민을 만난 시간
권서진
청년·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참여한 건 몇 번 안 되지만, ‘선거’는 나에게 그리 크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냥 주어진 선택지 중에 내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을 투표일이 다가오면 급하게 결정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공허한 의무감에 하는 투표가 아니라 진심으로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했고, 이런 마음으로 선거운동도 자원하여 참여했다.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선거운동
나는 대구 수성(을) 오준호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에서 청년 당원들의 선거운동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자원하였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후보를 응원하는 진심을 가지고 참여할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대구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반응을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이렇게 당찬 마음으로 선거운동에 자원했지만, 조금 두렵기도 했다. ‘괜히 내가 선거법을 위반해서 피해를 주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내가 사람들을 잘 마주하고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쌓였기 때문이다. 이 무렵 선거 유세 지원에 대한 사전 교육이 있었다. 교육을 듣고 나니 선거운동 지원을 한다는 것이 더욱 실감 났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나는 대구에 내려갈 날을 기다렸다.
함께 선거운동을 지원하러 가는 운영위원들과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해 대구에 도착했다. ‘정말로 대구에 왔구나’ 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다른 풍경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씩 지날 때마다 주변 풍경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던 것은 기억난다. 외제차 브랜드 판매장들이 늘어서 있던 장면이 점점 낮은 건물들의 풍경으로 바뀌고 주변 소음이 적어지는 것을 느끼며 선거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잠깐 숨을 고른 뒤 선거복을 입고 명찰을 매고 배치받은 장소로 가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선거운동을 시작한 곳은 대구은행사거리였다. 차선이 많고 이동하는 차들도 많았으며 근처에 병원 건물과 은행 건물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기억한다. 보행자 신호등 쪽에 일렬로 서서 사람들이 건너오는 순간엔 멘트를 하고, 차들이 지나갈 때 8번 스티커를 붙인 손을 높이 들어 손인사를 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안녕하세요, 8번 오준호입니다”를 말하는 것이 낯설었다. 모르는 타인들에겐 한 마디도 건네기 힘든 세상이다보니 멘트와 손인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청대위 운영위원들과 함께여서 금방 적응했고 진심을 담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는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하나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시민들이 우리를 보고 ‘왜 저렇게 열심히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오준호 후보를 한 번이라도 검색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또 하나는 매번 실망스러운 선거 결과에도 ‘이번엔 달랐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왔던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진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기본소득당을 통해서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진심이 통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수성못을 돌며 선거운동을 할 때 술을 먹고 유세원들에게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당 앞에서 인사할 때 나를 보고 “딸도 아닌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한 사람, 인사하는 우리에게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지나간 사람도 만났다. 처음 이들을 마주했을 땐 화가 나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적대를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마주한 경험이 많지 않았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조치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하루를 돌이켜 보는 순간이면 당혹스러움이 분노가 되기도 했고 머릿속에 ‘왜?’라는 물음표가 맴돌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내렸던 결론은 저런 행동들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저들도 나와 결이 다를 뿐 비슷한 성질의 진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들이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더 쉽게 잊을 수 있었고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어르신들이 오준호 후보의 출생연도를 듣고 너무 어리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당내에서는 그래도 가장 어른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오준호 대표님이 지역구 후보로 나와서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듣는 것을 경험하며 기존의 정치가 얼마나 멈추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 당은 기존의 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민들과 진심이 통하는 순간들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장면들도 있었다. 주로 수도권에서 당원 활동을 하면서 자주 보던 당원분들 말고도 다른 지역에 계신 당원분들과 지역 위원장님들을 만난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지만 서로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분들을 만나서 반갑고, 서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환대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선거 유세 후 사무실로 돌아오면 서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인데도 고생 많았다고 나누는 말들의 온도가 참 좋았다. 환대의 기반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비슷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이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당의 공동체성을 느꼈다. 당원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함께, 확장된 공동체성을 느낀 것은 처음 경험한 감각이었다. 또 기억나는 것은 대구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이다. 거리에서 우리를 보고 ‘파이팅’을 외쳐주는 시민, 조심스럽게 다가와 오준호 후보를 뽑았다고 속삭이는 시민, 우리 선거운동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라고 말하는 시민을 보며 ‘진심이 통하는 순간’을 느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정치적 행동을 하면서 사는 내가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또 다짐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시끄러운 사회 속에서 무력감만 느끼기보다는, 그래도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을 품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것이 이번 선거운동이 내게 준 경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