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여름호 (기고) 22대 총선을 돌아보며 - 5천 킬로를 달린 용혜인 선본의 전국유랑기
양다혜
용혜인 후보 수행비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4년을 시작할 때부터 매일매일 곱씹었던 문장이었다. 국회에서 일했던 모든 시간이 쉽지 않았지만 선거를 앞둔 6개월은 정말이지, 폭풍우 속에서 우리만 조각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치의 격랑 속에서도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 하나를 꼭 쥐고 버티고 있었던 그 시간이, 마치 치과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선거가 한 달 후로 성큼 다가왔던 3월이 반갑기만 했다. 용혜인 비례대표 후보가 선출되었고, 후보의 수행비서를 맡은 나는 더불어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운동을 뛰게 되었다. 낯선 당명으로 치르는 선거, 연합정당으로서의 선거운동, 쉽지 않은 선거판세......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하나도 없는, 어려운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낙관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아마도 이제껏 그랬듯,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과제를 하나하나 이뤄왔던 우리 당의 저력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걱정이었다. 바로 현행 선거법이 비례후보에게는 매우 많은 제약을 가한다는 점이다. 유세차에 올라설 수도 없고, 마이크를 쥐고 연설할 수도 없고, 타 정당의 후보에게 지지를 표할 수도 없었다. “민심의 축제라는 선거에서, 우리는 어떻게 국민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러나 선거법상 제약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를 상쇄하는 커다란 장점이 있었다. 바로 전국이 지역구라는 점이다. 거리에 나서면 스치는 모든 사람이 유권자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매력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일도, 또 해야 하는 일도 명확했다. 용혜인 선본은 카니발에 피켓 하나와 명함 2천 장을 실은 채로 전국 방방곡곡을 향했다.
서울, 경기, 부산, 창원, 세종, 대전, 대구, 옥천, 청주, 공주, 보령, 천안, 전주, 군산, 창녕, 영주, 춘천, 원주 그리고 광주까지. 선거운동 내내 약 5천 킬로를 달리며 전국을 유랑했다. 후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한 사람이라도 더 명함을 주고 손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본선 전에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선거가 시작되니 1분 1초가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발걸음했던 모든 곳,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 가장 마음 깊이 남은 장면을 세 가지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전국 곳곳의 시장을 방문한 일이다. 세종 조치원 전통시장, 광주 말바우시장, 대구 목련시장, 의정부 제일시장, 서울 남대문시장...... 손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전국 방방곡곡의 시장을 방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 후보가 젊고 소수정당의 의원이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참 많은 분들이 손을 내밀며 반갑게 환대해주셨고 가는 길을 멈추어 후보의 손을 맞잡았다. 4년 사이 기본소득당이 작지 않은 성장을 해냈음을 체감했다.
마이크 잡고 연설을 하지 않는 대신,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더 많이 경청할 수 있었다. 또 유세차에 설 수는 없었지만, 또 그만큼 시민들과 가까이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나라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노하고 한탄했으며, 야당이 더 잘해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탄이든 질책이든, 언제나 끝은 “꼭 좀 바꿔주십시오” 라는 한 마디였다. 용혜인 후보의 두 손을 꼭 잡고 진심을 담아 전하는 그 한마디의 울림이 마음에 남았다. 시민들이 꼭 붙들고 싶은 한 줄기 희망의 무게가, 그 말에 담겨 있었다.
두 번째는 천안에서 유세할 때 일이다. 유세 현장 한켠에 붉은 옷을 입고 붉은 피켓을 든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멀리서 붉은 색을 보고는 의아했지만, 피켓에 쓴 문구를 보고 난 다음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채상병이다” “내가 박정훈이다”
붉은 옷을 입고 유세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분들은 해병대 예비역분들이었다. 국민의힘이 채상병 외압수사의 핵심인물인 신범철 후보를 천안 지역구 후보로 공천했기 때문이다.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지던 유세 현장에서, 꼿꼿이 피켓을 높게 세우고 있는 예비역분들의 모습이
무겁게 남았다. 당연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윤석열 정권의 현실을 보여주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범철 후보를 끝내 낙선시킨 데 이어 21대 국회가 채상병 특검법을 의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채상병이다’라는 민심의 레드카드 덕분일 것이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일은, 전주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용혜인 후보의 유세에 응원방문을 해주신 것이다. 참사 진상규명이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송구할 뿐인데도, 언제나 늘 먼저 찾아와주시고 용혜인 후보에게 꼭 국회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응원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아이를 잃고 나서야 선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반드시 진실에 투표해달라”
이번 총선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전국을 돌며 저렇게 외쳤다. 어쩌면 정치에 냉소하고 변화를 불신하는 것이 당연한 참사 유가족들이, 도리어 누구보다 변화를 설득하려고 애쓰시는 그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지면을 빌려, 용혜인 의원과 기본소득당을 만날 때마다 고맙다고 손잡아주신 유가족들께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위로받았다는 말씀을 전한다.
경쾌하게 시작한 이 글을 다시 보니 ‘무게’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게 지난 총선의 소회를 꿰뚫는 단어가 바로 ‘무게’이지 않을까 싶다. 4년 전, 갓 창당한 기본소득당의 선거운동을 할 때는 마음에 별 부담이 없고 자유로웠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의 행동이 가진 무게를 확인했다. 기본소득당과 용혜인이 더 많은 국민께 희망과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체감했다. 그 무게가 무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당의 성장을 민생 현장 곳곳에서 체감하며 뿌듯했다.
다시 한번 4년의 출발선 앞에 선 우리 당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당이 이제껏 그래왔듯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력으로 증명해낼 거라고 믿는다. 다가올 22대 국회가 기본소득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담대한 꿈을 이뤄내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 역시 그 여정에 기꺼이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발에 꼭 맞는 새 운동화도 샀다.
이제 또 나아갈 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