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전라남도에 부는 기본소득 바람 _문지영(전남기본소득당 위원장)
전라남도에 부는 기본소득 바람
문지영(전남기본소득당 위원장)
여기저기에서 ‘지방소멸’을 이야기한다. 청년 유출, 고령화, 인구감소는 모두 지방소멸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전체인구는 감소하는데 수도권으로는 인구이동이 증가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역의 인구감소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지역에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개발사업과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기본소득이 나의 삶에 어떻게 다가왔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에게 날아온 기본소득
기본소득을 마음에 품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였다. 여느 날처럼 일과를 마무리하고 TV를 시청하다가 우연히 북유럽 복지국가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질문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몸이 아파도 살던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이 들어 소득이 없이도 불안하지 않은 삶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나와 주변 사람들의 현실은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 급급하며 ‘웰-다잉’을 이야기하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같은 시대,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데 어째서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 한국의 복지제도는 복지 수급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면서 수치심을 경험해야 하고 낙인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선별복지의 대상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어떠한 심사나 조건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소득인 기본소득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 선배는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우고 싶어도 삶이 너무 치열해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삶에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현재 안고 있는 불안 없이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삶이 불안하지 않다면 오늘 나의 선택이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조건 없이 일정한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불안정한 삶을 벗어나고 자신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기본소득이 있는 사회를 상상하며 그 실현 방법을 찾게 되었다.
전남에서 기본소득 바람이 불다
전남은 2022년 기준 고령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24.8%). 당연히 노인 빈곤율도 높다. 그밖에도 많은 위기가 지역민의 삶을 위협한다. 지역 소멸 위기, 농촌 위기, 이주여성의 인권, 여성의 정치적 지위, 공공성이 무너진 대중교통(65일간 목포 시내버스 운행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발 딛고 서기 힘든 이곳 전남에서, 기본소득은 삶을 지탱해 줄 장치로서 제안되고 있다. 신안군에서는 햇빛 연금 또는 바람 연금의 이름으로 주민 배당을 시작했다. 진도군에서는 주민발의를 통해 기본소득조례 제정을 예고했다. 전남교육청은 학생기본소득 공약을 이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전라남도 농어민 공익수당조례’도 제정되어 지난해부터 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공유부를 기반으로 하는 개발이익을 기본소득 방식으로 나누고, 학생 유입을 늘리는 해법도 기본소득에서 찾고 있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일까? 전남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기본소득에 대한 열의가 높다. 이러한 전남의 기본소득형 정책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신안군은 ‘햇빛 연금’을 주민에게 지급한다. 버려진 폐염전이나 새우 양식장 등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그 전기의 판매 수익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신안군은 지난 2018년에 전국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3년 만에 첫 배당금을 주민에게 지급했다. 배당금은 개인별,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다. 자라도의 경우 2021년 4월에 햇빛연금을 처음 배당하기 시작해 23년 3월 현재까지 매 분기 1회씩 총 8회 지급했다. 1인당 분기별 배당액은 최고 51만 원까지 지급됐다. 신안군은 올해는 임자도에도 햇빛 연금 지급을 시작하고 2024년에는 비금, 증도, 신의도에도 지급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군민 4만 명의 45%가 혜택을 받는다. 햇빛 연금을 지급하고 나서 신안 섬마을에 인구가 유입되면서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가 살아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남교육청에서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 기본소득’은 전남지역 초등학생에게 매월 20만 원 기본소득을 올해 7월부터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22개 시·군 가운데 16개 군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에게 지급하고, 차차 중·고등학생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물론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에는 어긋난다. 6개 시·군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외되는 시·군 없이 전남 도내 전체 초등학생에게 지급하고 이를 위해 지급액을 조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역소멸위기의 군 단위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전남지역 초등학교 468개 중에서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곳이 46개나 되기 때문이다.
‘학생 기본소득’이 전남교육의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남의 기본소득 실험이 지역공동체를 살려 지역소멸 위기의 해법으로 확인된다면, 전남에서 부는 기본소득 바람은 대한민국 전역으로 펴져갈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될 전남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서울과 전남에서 동시에 열린다. 주제는 “현실 속의 기본소득(Basic Income in Reality)”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시작 행사는 전남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는 전 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학술적, 사회적, 문화적 성과를 공유하고 우애를 다지는 대회다. 대회에 참가할 각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전남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실험과 정책을 주목할 것이다. 이번 대회가 기본소득이 현실 속에 확장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