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봄호】노동자 권리를 위한 나의 싸움 "노조와 연대하다가 노무사 시험에 도전하다"_최승현(노무법인 삶 대표, 공인노무사)
노동자 권리를 위한 나의 싸움
"노조와 연대하다가 노무사 시험에 도전하다"
최승현(노무법인 삶 대표, 공인노무사)
‘가자 노동해방’이라는 민중가요를 대학 시절에 좋아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는 ‘변혁적 산별노조 건설’이 그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믿었다. 투쟁하는 노동조합 현장에 찾아가 연대했다. 1996년 겨울 김영삼 정권과 한나라당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자행하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 연대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같이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은 학생운동을 마친 후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당시 주요 기업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하고자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정규직 입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1차 하청도 어려워서 2차, 3차 하청에서 현장 경험을 해야 했다. 당시 간접고용 노동자뿐 아니라 계약직 노동자, 특수형태노동자도 상당히 늘었다. 그러나 이런 비정규직들은 주류 노동운동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정규직 노동자의 이슈가 중요한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정작 현장은 비정규직 천지였다.
노동단체에 일하던 어느 날, 한 직업전문학교 교사가 찾아왔다. “현장에 나간 학생이 산재를 당했고 임금도 체불됐다”고 했다. 단체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교사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교사 역시 계약직이었고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겪고 있었다. 그가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 같이 했다. 전국을 그와 함께 돌아다녔고 파업도 같이 했다. 결국 위원장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비정규직 교사들은 모두 정규직이 됐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노동법을 조금 더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사 시험을 치기로 했다.
노무사로 일하다 국회 노동정책 보좌관으로
공대 출신인 내가 생소한 법 과목을 공부하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합격을 해야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만들어 카드 돌려막기를 끝낼 수 있으니 절박했다. 노력한 끝에 합격했고, 회사 자문을 하는 노무법인에서 수습을 했다. 그곳은 나와는 딴 세상 같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노무사가 되어 산재, 과로사,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사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상담도 자주 했다. 노동자건강권 단체에도 가입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산재사망기업 고발운동’을 할 때, 성수역 스크린도어에서 사망한 노동자 문제로 서울메트로 등을 고발해서 조사를 받게 했다. 그때 고용노동부가 서울메트로의 노동실태를 조금만 제대로 바꿨다면 바로 다음해 ‘구의역 김군’ 같은 사건이 안 벌어졌을 것이다. 참 안타깝다.
노동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화했다. 노동운동은 앞서지 못하고 뒤따라가기에도 바빴다. 나는 비정규직, 최저임금 1만원, 노동안전, 플랫폼노동 등 여러 노동 이슈를 세상의 변화에 맞춰 조금씩 공부했지만 사회를 바꿀 대안을 이들 이슈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나갈 텐데, 기술이 발달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 이 시대에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기본소득에 관해, 노무사 일을 시작하던 2007년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나도 처음 접했다. 당시 금민 후보를 도우며 기본소득을 알았지만 당장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기본소득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중심에 건 정당인 기본소득당이 창당할 때 같이 참여했다. 곧 21대 국회에 기본소득당이 원내 진입하자 나도 용혜인 의원의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기본소득을 사회적 대안으로 만들도록 돕고 노동사안 대응에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국회는 진검승부의 장이었다. 말보다 실천이 필요하고 실천에는 실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처음 경험하는 국회의 시스템을 겪으며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갔다.
노무사로 일할 때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활동을 했다. 과로사, 근골격계질환, 산재자살 등을 심사하는 일이다. 그때 아파트나 공동건물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유독 많다는 걸 알았다. 국회에 와서 경비노동자 과로사 실태에 관련해서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국회 토론회를 진행했다. 그래서 경비노동자의 과로사가 일반노동자 과로사보다 6배나 많다는 것을 알렸다.
‘직장갑질119’의 상담노무사로 일할 때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상담을 많이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이 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까닭에 통계도 부실하고 제도에 허점이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방치되면 산재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산재자살 자료를 조사해 토론회를 열었는데 역시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가 자살산재의 원인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적은 노동자의 산재자살 비율이 높았다.
현재 산재통계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재해 통계만 포함된다. 여기에는 공무원, 군인, 교직원, 어선원, 선원 등의 재해는 빠져 있다. 이들에 대해서 통계가 없으니 산재 예방 대책도 없고, 예방 대책이 없으니 안전하지 못한 작업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용혜인 의원을 통해 국정감사에서 노동재해종합통계가 필요하다고 문제제기 했다. 노동재해종합통계 신설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국가통계포털에 여러 재해 통계가 같이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용혜인 의원실에서 다양한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현안을 의제화했다. 전국환경노조와 함께 쓰레기소각장 및 하수처리시설의 작업 환경에서 검출된 다이옥신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또 한국조폐공사 비정규직 여권발급원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도 드러냈다. 직장맘지원센터로부터 육아휴직 후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함에 겪는 부당함에 대해 듣고 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고 법개정안도 발의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이 주휴일, 퇴직금, 연차휴가에서 겪는 차별 문제,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이 주20시간 일하면 0.5명으로 계산하여 불이익을 주는 문제도 다뤘다. 용혜인 의원실을 찾아와 협력을 청하는 노동조합, 단체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힘을 보탰다.
노동권과 기본소득의 만남을 위해
2022년 7월까지, 2년 조금 넘게 국회 보좌관을 하고 퇴직했다. 역량의 한계도 느끼고, 재충전도 필요했고, 노동법을 잊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국회 바깥에 새롭게 자리를 잡고 싶었다. 국회를 나와 한동안 쉬다가 2022년 말부터 다시 노무사로 복귀했다.
윤석열 정부가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다. 현 정권은 노조 혐오를 바탕에 깔고 노조를 범죄집단으로 생각한다. 국고보조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노조 회계장부를 전부 공개하라 하고, 온갖 노조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노동탄압을 통해 지지율을 올리고 보수 결집을 이루려 한다. 그러니 노조 혐오를 기반에 둔 정책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고 탄압과 노동정책 개악이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이라는 방향은 옳았다. 노동조합을 존중하는 내용의 정책도 폈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를 비롯해 개혁해야 할 과제를 매우 많이 미뤘다.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여기에 맞는 노동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권이 기본이 되려면 기본 생활을 같이 보장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전보다 더 필요해졌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세상이 거꾸로 간다. 윤석열 정부는 변화하는 노동의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대응하기는커녕 ‘주69시간제’ 같은 시대착오적 노동시간 연장 정책을 내놓고 노조탄압에 전념하며 임금체계도 기업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는 복지국가가 낡아 새 옷이 필요한데, 도리어 낡은 옷마저 찢어버려 맨살에 찬바람을 맞게 만든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을 고민한다. 먼저 노무사로 할 일을 잘 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과 노동이 어떻게 잘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려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당이 윤석열 정부에 맞서 진보적 노동정책을 낼 수 있도록 의제를 찾고 힘을 보태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