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가을호 ④ [인터뷰] “알래스카 시민배당, 한국도 얼마든지 가능해” 「사명이 있는 나라」 펴낸 오준호 공동대표
[인터뷰]
“알래스카 시민배당, 한국도 얼마든지 가능해”
「사명이 있는 나라」 펴낸 오준호 공동대표
인터뷰어 : 인커밍편집팀
공동대표 취임 1년입니다. 한 해를 돌아본다면?
대표단 선거에 나설 때 시인 딜런 토마스를 인용했습니다. ‘작별인사 남기고 순순히 떠나지 마라 / 빛이 꺼짐을 거부하며 분노, 분노하라.’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새 행성을 찾아 떠나는 장면에 나오는 시구인데요. 대선 후 기본소득 운동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았지만 체념하지 않겠다, 다시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히려 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새로운 도전’을 모토로 제시하고 세 가지를 약속했죠. 첫째, 기본소득당 기관지 창간입니다. 공약대로 <인커밍>을 창간했습니다. 둘째, 기본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비단 돈뿐 아니라 기본적 안전과 존엄을 구하는 이들, 곧 이태원 참사 피해자나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리 당은 성실히 다가갔습니다. 셋째, 기본소득 있는 대한민국 혁신 방안을 제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 「사명이 있는 나라」에 그 방안을 담았습니다.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책까지 썼나요?
밤잠과 주말 휴식을 줄여 썼죠. 그리고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제가 소장으로 있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연구원들이 자료 조사에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동안 단독으로 또 공저로 낸 책을 세 보니 이번이 열여섯 번째 책이네요. 책마다 문제의식이 있지만 이번엔 더 절실했습니다. 전엔 제가 작가로서 문제의식을 글로 펼쳤다면, 지금은 정치인으로서 그것을 정말로 실현하고자 하니까요.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기본소득 운동이 일시 가라앉은 건 보수 검찰정권 때문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권은 ‘대안 부재’ 상황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기본소득 운동은 스스로 대안적 설득력을 더 확보해야 합니다. 대선 후 제게 두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는 ‘조세형 기본소득 모델’의 한계였습니다. 대선에서 우리는 ‘월 65만원 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연 390조 원의 재원을 조세 개혁으로 확보한다고 밝혔죠. 조세 개혁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충분한 기본소득 재원을 조세 하나로 확보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보완책이 필요하죠. 다른 고민은 ‘기본소득 하나로 만병을 고치려 하느냐’는 오해를 극복하는 겁니다. 기본소득을 포함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거죠. 새로운 모델은 생산과 분배가 선순환하고 공공투자가 모두의 소득향상으로 돌아오는 모델입니다. 조속한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모델이어야 하고요. 대선 때도 이 내용을 말했으나 시민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의 대안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책을 썼죠.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사명이 있는 나라’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보셨죠? 비밀요원 이단 헌트가 정예 팀을 모아 불가능한 사명을 달성합니다. 사명이 있는 나라도 사회 역량을 한 팀으로 모아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에 도전합니다. 기후위기, 안보위기, 불평등위기라는 커다란 도전이 우리 사회 앞에 놓였습니다. 이 도전을 헤쳐 나가려면 사명을 가진 정부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부가 나와서 이 엄중한 위기를 극복해 대한민국을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만들길 바라며 제목을 붙였습니다.
책에 ‘사명 지향’이란 개념이 중요하게 나오던데,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사명 지향(mission-oriented)’의 의미는 정치 공동체가 큰 목표를 사명으로 정하고 공공과 민간의 역량을 모으자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0년대 아폴로 프로젝트였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달 착륙이란 무모한 과업에 도전하자며 국민을 설득했습니다.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며 아낌없이 투자하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협동해서 결국 달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때 정부 투자로 개발된 첨단기술들은 다양한 상업제품에 적용되어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성취는 정부가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 일어났죠.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부정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는 뒤로 빠지고 혁신은 시장에 맡기라고 요구했죠. 그러나 신자유주의하에 혁신은 정체됐고 불평등은 커졌습니다. 이를 반성하며 최근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사명 지향’ 정부 리더십을 다시 강조합니다. 정부의 선도적 투자가 관건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처럼 큰 과업은 민간기업과 시민의 자발적 동참에 맡겨서 달성할 수 없죠.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시장에 기업이 먼저 투자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인내 투자’를 해야 민간자본도 뒤따릅니다.
특히 ‘사명 지향 산업정책’을 강조했는데?
미국과 유럽도 그린뉴딜, 그린딜이란 이름의 사명 지향적 산업정책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RE100(제품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달성 여부가 국제무역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배제되면 수출 위주 경제를 가진 한국은 손실이 막대합니다. 따라서 단기간에 전력을 재생에너지 중심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 산업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태양광·풍력 발전단지와 전력망을 어디에 얼마나 확보할지 계획하고, ‘나사’ 같은 임무 수행기관을 세워 그 기관의 주도하에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계획을 실행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을 땅도 지자체에 할당해야 하고요. 또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저렴하고 효율 높은 신소재 태양전지 개발이나 스마트그리드(전력망) 개발을 앞당겨야 하죠.
산업정책 등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건 기존 진보주의자와 달라 보입니다만?
저는 진보주의자는 특정 상황에서 끌어낸 분석을 일반적 진리로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베트남 독립투쟁 지도자 호치민은 ‘응만변 이불변(應萬變 以不變)’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변치 않는 한 가지를 가지고 세상의 수많은 변화와 마주하라는 뜻입니다. 정부 산업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좌파와 우파 안에서도 다릅니다. 우파 신자유주의자는 산업정책을 시장 간섭이라며 비난하지만 우파 발전주의자들은 정부 주도 경제정책을 선호했죠. 박정희 정부처럼 말입니다. 좌파도 국가권력을 경계하는 자율주의부터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긍정하는 케인스주의 입장까지 다양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주주의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면서 국가에 방향을 부여하고 그 힘을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의 위기 국면을 헤쳐 나가야죠.
전환자금 1천 조를 투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10년간 반드시 세 개의 과업을 이뤄야 하고, 이를 위해 전환자금 1천조 원을 투자하자고 했습니다. 그 과업은 탈탄소 녹색전환, 글로벌 혁신국가 도약, 온국민 평생배당 사회를 여는 겁니다. 이 과업을 달성해 선진 복지 경제로 가느냐, 달성하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침체의 늪으로 미끄러지느냐의 기로에 우리는 있습니다. 1천조 원 가운데 6백조 원은 녹색전환에 투자합니다. 연구를 종합하면 전력부문 탄소중립과 난방·운송의 전기화에 저만큼 비용이 듭니다. 3백조 원은 혁신국가 도약을 위해 정부 원천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입합니다. 1백조 원은 가칭 ‘한국연대기금’ 설립자금으로 사용합니다. 이 기금이 온 국민 평생배당의 재원입니다.
‘녹색전환, 혁신국가, 평생배당’ 셋이 함께 필요한 이유는?
온라인 게임에 탱커, 딜러, 힐러가 있잖아요? 그처럼 국가전략에도 세 과업이 같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막는 녹색전환,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가기 위한 기술혁신에 국가가 과감히 투자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투자가 일반적으로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겁니다. 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평생배당, 곧 기본소득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했다면, 그 보상을 소수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누려야 하니까요. 이것이 혁신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공유부 배당’ 모델입니다.
‘평생배당’의 방안으로 ‘국민부펀드’를 제안한 이유는?
한마디로 알래스카 시민배당을 한국에도 도입하자는 겁니다. 석유자원이 아니라 경제 공유부를 이용해 기금을 만들자는 거죠. 국민부펀드란 국부펀드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국부펀드는 대체로 정부가 기금을 소유하고 수익금도 정부가 알아서 사용하죠. 이에 비해 국민부펀드는 국민이 직접 기금을 소유하고 수익을 국민에게 배당합니다. 감염병 대유행 후 많은 이들이 국민부펀드 설립을 제안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챗지피티 개발기업 오픈AI 대표 샘 올트만이 대표적이죠. 자본주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법이란 겁니다. 저는 한국형 국민부펀드 ‘한국연대기금’ 설립을 제안합니다. 모든 국민이 기금의 공동 소유자가 되어 자본을 전환적 성장에 투자하며 수익은 평생배당으로 돌려받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세형 기본소득’의 한계도 보완합니다.
이 책은 분명 기존 정치세력을 향한 비판일 텐데, 누구를 향한 비판인가요?
우선 윤석열 정부 기조에 대한 정면 비판입니다. 윤 정부가 ‘돌아보니 세상의 맨 앞’에 섰다고 자화자찬했는데, 실은 시대 흐름의 맨 뒤에 서 있죠. 각국이 사명 지향 경제정책을 수립해 기후위기와 기술경쟁에 대응하는데, 윤 정부만 낡은 신자유주의 교리와 건전재정 도그마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겁니다. 주권자 국민이 정부와 국회에 사명을 부여해주면 이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른 비판 대상은 공룡 야당인 민주당, 그리고 진보세력입니다. 민주당이 집권을 바란다면 윤석열 정부 실정만 공격할 게 아니라 새로운 한국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합니다. 제가 제시한 과감한 녹색 산업전환과 시민 평생배당 정도 구상을 내놓으란 겁니다. 더 안타까운 건 정의당 등 진보세력, 제3정당이 되겠다는 신생 세력들입니다. 양당정치를 비난하며 차별화에 집중하지만 정작 자기만의 국가적 비전은 못 내놓고 있습니다. 당장 탄소중립만 해도 과거 ‘달 착륙’ 이상의 국가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계획과 의지가 있는 정치세력만이 대한민국 전환을 맡을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BIEN. 비엔)에서 하신 발표는 어떤 내용이었나요?
대회에서 두 개의 발표를 했습니다. 하나는 ‘한국 기본소득 운동의 정치적 도전’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 산업전환과 시민배당’이었죠. 첫째 발표에선 주로 기본소득당의 정치활동을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발표 후 필리프 판 파레이스, 스콧 샌턴스 등이 좋은 발표였다며 칭찬했습니다.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이 존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해외 참가자들에겐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두 번째 발표는 책의 핵심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어로 발표 준비를 하느라 애먹었는데 다행히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가이 스탠딩은 ‘한국연대기금’ 제안에 공감을 표하며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이번 비엔 대회는 준비 과정에 어려움이 컸는데 다행히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준비에 애쓴 모든 분들, 특히 우리 당원과 서포터즈에게 감사드립니다.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당원과 독자를 만날 계획인가요?
10월부터 전국 곳곳에 ‘북토크’를 열어 시민과 당원을 만날 겁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 윤석열 정부와 어떻게 싸울까 전망을 함께 만드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이번 총선은 첫째, 윤석열 정권의 중간 심판입니다. 국민에게 긍지를 주기는커녕 궁지로 몰아가는 정권의 독주를 막고자 우리 당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둘째, 날로 심각해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할 진짜 대안이 승리하는 선거여야 합니다. 책에 제시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환적 대안을 구성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겠습니다. 이러한 과제를 위해 저의 역할을 할 겁니다. 당연히 출마도 합니다. 구체적 방식은 당 총선전략기획위원회에서 고민 중입니다.
기본소득당 당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소수정당은 다수당이 못 된 미완의 정당이 아닙니다. 소수정당은 다수당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소수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전략과 대안,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세상을 우리가 바라는 쪽으로 끌고 갑시다. 끝으로, 제 책 많이 읽어주시고, 주변에 선물해주시고, 도서관에도 신청해주세요. 민들레 씨앗처럼 생각을 퍼트려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