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가을호 (이슈 인커밍) 모두를 따뜻하게 비추는 햇빛연금이 되려면
모두를 따뜻하게 비추는 햇빛연금이 되려면
남혜윤(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지난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5박 6일간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는 ‘2024 햇빛바람농활’을 다녀왔다. 이번 농촌연대활동은 기본소득당 전남도당과 공동으로 주최하고 기획했으며, 활동한 곳은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였다. 신안군은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를 통해 태양광 발전의 수익을 나누는 ‘햇빛연금’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농활은 기후위기와 지방 소멸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햇빛연금을 배우러 간다는 취지로 기획했다. 일주일 동안 18명의 농활대원이 농가 일손 돕기뿐 아니라 주민 구술 인터뷰, 햇빛연금 간담회, 해변 플로깅 등을 하며 바쁘고 유익한 나날을 보냈다.
이 글은 농활대원들이 진행한 주민 구술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대원들은 햇빛연금을 기사로만 접하다가 주민 구술 인터뷰를 하며 주민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햇빛연금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주민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농촌 문제와 얽힌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 듣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흘리 주민은 10여 명이고 인터뷰 장소는 주민 집이나 마을회관, 비닐하우스 등 다양했다. 주민들은 흔쾌히 인터뷰와 기고를 허락했고 시원한 음료수나 과일을 대원들 손에 쥐어 주었다.
한때 붐볐던 마을, 여흘리
안좌도 한가운데 위치한 여흘리는 주로 양파와 마늘 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섬이지만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어귀의 우실(방풍림)에는 300년 넘은 보호수가 마을을 감싸듯 가지를 뻗고 있다.
여흘리 주민들은 대부분 몇십 년 동안 마을에 살고 있는데, 여흘리가 토양이 비옥하여 사람이 많이 모여든 풍요로운 마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젊은 인구의 유출과 고령화,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해 지금 여흘리에는 88세대만이 거주하고 있다. 대원들이 마을을 둘러볼 때도 군데군데 빈집이 보였다. 여흘리에서 나고 자란 한 주민은 지금의 여흘리에서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구멍가게가 우리 마을만 해도 다섯 개인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고 면 소재에밖에 없잖아요.” (‘면 소재’는 면사무소가 있는 안좌도 중심부를 가리킨다.)
생활 속에서의 햇빛연금
“(햇빛연금을) 갓난아기부터 내일 모레 죽을 노인네까지 다 준다.”며 대원들에게 신안으로 이사를 적극 추천하실 정도로, 햇빛연금은 주민들과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보였다. 여러 기사에서도 지속적 감소세를 보이던 신안군의 인구가 햇빛연금 시행 이후 144명(2024년 3월 기준, 전년 대비)이 증가해 햇빛연금이 지역소멸의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여흘리는 주민들 대부분이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에 가입한 마을이다. 여흘리에서 받을 수 있는 햇빛연금 배당금은 분기별로 인당 17만 원 정도. 햇빛연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지역화폐로 지급되므로 “저축하기보다는 소비한다”라며 “외식할 때 사용한다”, “주유소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농약이나 생필품이 필요할 때 한 번씩 쓴다”, “마트에서 쌀을 산다”, “필요한 거 농협에 가서 산다” 등 다양하게 답했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어서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농사 안 짓는 분들한테는 도움이 되지.”라는 주민의 말처럼 햇빛연금은 지급할 때 노동 여부 같은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몸이 아프거나 일손 부족 등의 이유로 더는 농사일을 계속할 수 없는 주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소득이다.
물론 생활에 유의미한 도움이 되려면 분기당 17만 원보단 더 큰 금액이 필요할 것이다. 신안군은 2030년까지 풍력발전의 수익을 배당하는 ‘바람연금’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면 햇빛연금과 합쳐 월 5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햇빛연금이 늘어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한 주민은 농촌에서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들도 다 노쇠해가지고 하늘나라 가셔버리고 그러니까 농촌교회가 어려워. (…) 혜택을 받으니까 교회 활동하는 데 좀 도움이 되겄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기적으로 보장받는 충분한 금액의 소득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주민은 자신이 몸이 아프지만 농사일을 줄일 수 없다며, 자식들 챙기고 자신의 미래와 노후에 쓸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사일을 인제 줄여야 돼. 나이를 묵은께 이제 조금씩 줄일라고 생각은 해도, 마음은 줄인다 해도 또 그렇게 얼른 안 줄어.” 생계뿐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돈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모두가 필요하다. 햇빛연금이 커져서 그 주민에게 쉼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햇빛연금에 남은 과제
햇빛연금을 통해 정기적으로 돈을 수령하니 좋다는 대답이 많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분기별 17만 원이라는 계획과 달리 올해 2분기 여흘리 햇빛연금 지급액은 15만 원이었다고 한다. 올봄에 비가 자주 와서 발전소 순이익이 줄어들었던 탓이다. “요즘에는 너무 날씨가 비가 많이 와서 (…) 전기가 안 되니까 돈을 적게 줬어.” 태양광 발전사업의 특성상 발전량은 날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발전소 순이익이 변동되면 배당금 또한 변동된다. 기후위기로 인해 점차 기상이 예측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재원으로 하는 소득은 불안정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또 햇빛연금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도입 당시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와 가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며 반대했다. 발전소가 파산하면 주민조합이 책임을 떠안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당시 신안군에서는 간담회 등으로 주민들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간담회 같은 거 했지. 주민 반대가 심했어. 하지만 지자체장이 허가를 내주니까 어쩔 수 없이 강행한 거지.” 당시 지자체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끼고 여전히 태양광 발전소에 회의적인 입장을 비추는 주민들도 있었다.
한편 주민들은 연금보다는 피해보상금의 개념으로 햇빛연금을 인식하는 듯했다. 오히려 ‘햇빛연금’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고, ‘태양광으로 분기마다 나오는 돈’이라고 말씀드려야 이해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대원들은 ‘햇빛연금’으로 신안군 개발이익공유제를 처음 접했기에 당연히 이를 모든 주민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 나 목포 갔다 오는디 차가 막혀 있더라고. 뭔 일이냐고 그랬더만 주민들이 도로에서 누워가지고 데모를 한 모양이에요. 그래갖고 잘 합의를 봐갖고 거 마을은 우리보다 1인당 얼마씩 더 지급을 받죠.” 햇빛연금은 발전소와 가까운 마을이 좀 더 많은 금액을 지급받는 구조이다. 기사에는 ‘발전소 거리에 따라 가중치를 둔다’고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피해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돈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대기업이 독점하는 이익, 주민들과 나눠야
농활대원들은 주민들에게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햇빛연금에 대해 들어보는 한편, 지자체의 정책적인 관점에서 햇빛연금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졌다. 주민 구술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내호리로 가서 신안군청, 태양광 발전소, 협동조합에서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햇빛연금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농활대가 기획한 행사다. 간담회에서는 태양광 발전소 현황, 신안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의 추진 과정과 성과에 대해 정리된 발표를 들었다.
태양광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의 산업 시설이 들어서는 경우, 지역의 주민들이 받는 피해보상금은 일시적이다. 마을회관을 지어주는 것으로 지급을 대신하기도 한다. 신안군 개발이익공유제의 주민소득도 제도상으로는 피해보상금 개념이다. 대부분 피해보상금 지급 이후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피해는 주민이 보는데 이익은 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신안군은 지속적으로 그 이익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햇빛연금이 만들어졌다. 주민 인터뷰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태양광 발전소가 환경이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 대해 대원들이 질문하기도 했는데, 발표자들은 전자파 등 인체에 해로운 영향은 거의 없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지자체가 주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엿보였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모두와 함께 가기 위해
여흘리에서 주민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는 그전까지 접한 정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처음 듣거나 생각하지 못해본 점들도 있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 도입 과정에서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또 주민 구술 인터뷰와 전문가 간담회라는 두 관점에서 햇빛연금이라는 제도를 바라보며, 언론 매체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햇빛연금에 대한 의견과 시각의 차이를 몸소 접할 수 있었다. 이는 현실에서는 모든 일이 결코 매끄러울 수 없으며, 서로 다른 개인들이 존재하므로 언제나 굴곡과 요철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오히려 주민들이 한가지 의견만 말한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애초에 주민의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발전사업자가 구상한 사업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햇빛연금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신안군이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사업자가 독점하게 두지 않고, 주민과 나누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큰 의의가 있다. 햇빛연금은 지금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멈춰야 하는 정책이 아니라 한계를 딛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는 정책이다. 신안군이 기업 이익의 주민 공유를 추진해왔듯이, 햇빛연금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가 이번 햇빛바람농활을 통해 햇빛연금이라는 민주적 에너지 전환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농활 기간 대원들은 민주적 합의가 있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갔다. 자잘한 생활 수칙부터 마을잔치의 세세한 준비까지 농활대는 회의를 통해 합의하여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매우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며 모두의 합의를 만들어가는 동안 우리는 소통의 의미와 가치를 체감했다.
신안군은 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제를 전국 최초로 시행했다. 간담회 발표자들은 “다른 지자체들도 과감히 도입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되기를 바란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어려워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신안군이 시작한 길을 우리 사회도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