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가을호 (이승석의 사회연대경제 탐방) 농촌마을, 에너지 자립을 꿈꾸다
이승석의 사회연대경제 탐방 ①
농촌마을, 에너지 자립을 꿈꾸다!
- 충북 괴산 담바우마을에너지협동조합 -
이승석 (최고위원, 사회연대경제특별위원장)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사회연대경제에 어울리는 말이다. 사회연대경제란 시장경제와 국가행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주민 참여에 기반하여 공공과 기업이 함께 풀어가는 방식이다. 좋은 말인데 가능한가? 어떻게 실현할까? 실마리는 현장에 있다. 그래서 인커밍은 이승석 전 사회적경제연대회 대표의 ‘사회연대경제 현장 탐방’ 연재를 시작한다.
장마가 물러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첫날, 충청북도 괴산군 장암면 ‘담바우 에너지 공급센터’(이하 센터)를 찾았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엄은희 박사, 김종필 용혜인 의원실 선임비서관이 동행했다. 현장에서 괴산군 정원산림과 신진우 팀장, ㈜나무와 에너지 이승재 대표, 담바우마을에너지협동조합 신성문 이사장 등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괴산군은 2022년, 산림청 ‘산촌산림에너지자립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되었다. 사업비는 총 44억6천2백만원으로 국비와 지방비가 각 50%씩 투자되고 여기에 지방소멸대응기금 15억이 더해졌다. 이 예산으로 센터는 괴산군 장암마을(43가구)과 신대마을(17가구)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고, 68kW급 열병합발전기를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판매한다. 센터는 마을주민 60여가구로 구성된 담바우마을에너지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이 위탁받아서 운영한다. 협동조합은 열공급 및 전기 판매를 통해 창출되는 예상이익(연매출 2억, 순이익 2천2백만원)을 마을 복지 확대를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괴산군은 지원 조례를 5월에 이미 제정, 공표했다. 군은 사업의 관건이 될 안정적 연료(목재칩) 공급을 위해 ‘산림자원순환센터’(사업비 41억)를 올해 완공 목표로 조성하고 있다. 목재산업 활성화를 위해 ‘탄소순환센터’(사업비 130억)도 2025년까지 조성 중이다. 또한 건강한 산촌공동체 문화를 위한 ‘산촌청년공동체 활성화센터’(사업비 30억)도 짓고 있다.
하나의 굴뚝만 있는 마을
괴산군 장암마을과 신대마을에는 굴뚝이 딱 하나만 있다. 센터에 설치된 목재보일러 굴뚝이다. 연기는 거의 없고 실오라기 같은 아지랑이만 피어오른다. 85도로 데워진 난방수는 두 개의 대형 축열조(열을 저장하는 탱크)에 저장되었다가 약 7km에 달하는 열배관을 타고 실핏줄처럼 각 농가에 공급된다. 농가마다 300리터급 소형 축열조가 별도 설치되어 있다. 집마다 보일러를 돌리지 않고도 온수를 사용하므로 전기 사용은 최소화된다. 센터에는 현재 11kW의 전기가 사용되는데 예정된 지붕 태양광 설치가 완료되면 완전한 에너지 자립이 실현된다.
산촌에 사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겨울 난방비다. 감당할 수 없는 난방비 때문에 고령의 노인들이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마을에 공급되는 에너지 가격은 기존 화석연료 대비 약 75% 수준이다. 가격은 에너지 소비자이자 조합 운영자인 마을 주민 스스로 결정했다. 농가별 보일러가 없어졌으니 고장이나 시설 관리에 신경 쓸 일도 없다.
보일러에 공급되는 목재칩은 주변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된 것이다. 주로 벌채 후 버려지는 미이용 잔가지, 가로수 전정목 등이다. 산림 벌채 후 버려진 나무들은 그대로 두면 썩으면서 평생 포집한 탄소를 대기로 방출할 뿐 아니라 산불이 나면 불길의 이동 경로가 되거나, 홍수 때 쓸려내려와 댐을 막는다. 산림바이오매스 활용은 탄소중립의 실현, 지역소멸 대응의 관점에서 오랫동안 필자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안 되는 사업이야’에서 ‘우리도 해보자’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즉석에서 현장간담회가 이루어졌다. 나는 무엇보다 마을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마을 단위의 사업이라는 게 공무원과 전문가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문 협동조합 이사장은 현재 마을 이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주민 설득 과정의 어려움을 묻자 신 이사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저는 마을을 떠나야 할지도 몰라요!” 이 한마디에서 그의 마음고생을 함축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센터에서 생산된 85도의 뜨거운 물은 약 7km에 달하는 열배관을 통해 개별농가로 공급되는데 땅을 10미터 팔 때마다 나오는 정체불명의 배관 때문에 작업이 진척 안 돼 속이 새까맣게 탔다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시골 땅속은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수십 년 전의 상하수도 배관이 복마전처럼 얽혀있는 것을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농가별로 설치되어 있는 보일러를 해체하는 일도 큰 난관이었다. 원래 촌에 사는 이들은 행정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갖고있다. 행정기관이 권하는 작물을 심을 때마다 가격 폭락을 경험했고 성공한 경우에도 소수만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한겨울에 보일러가 고장이 난다면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일이다. 물론 이에 대비해 예비 보일러 도입도 현재 검토 중이라 한다. 이 모든 반대와 불신을 이겨내고 60개 농가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킨 신성문 이사장에게 마음으로 깊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괴산군의 담당 공무원인 신진우 주무관(현재 팀장 승진)은 사업 초기부터 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처음 이 사업 제안을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안되는 사업이야!” 이미 화천과 봉화에서 실패한 선례가 있고 주민 설득이 불가능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나무와 에너지 이승재 대표와 독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고 나서 바뀌었다. ‘이건 되는 사업이다. 이렇게 좋은 사업을 우리도 한번 해보자!’ 독일 등 주요 유럽의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산림바이오매스를 재생에너지의 주요 자원으로 활용한다. 필자 역시 6년 전, 유럽의 산림바이오매스 현황 조사차 독일,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그곳에선 산림바이오매스가 전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난방의 85%, 전기의 30%가량을 차지한다. 마침 전날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공약 경진대회에서 괴산군수가 본 사업으로 기후환경생태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진우 팀장에게 축하를 전했다. 신진우 주무관은 팀장으로 승진하고 다른 업무를 담당한다고 했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이 사업과 관련해서 여러 곳에 불려 다닐 것이다.
이과도 아닌 문과생이 어떻게
㈜나무와 에너지 이승재 대표는 이 사업의 초기 설계부터 시공, 기술 자문, 주민 설득까지 맡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전공자도 아닌 문과 출신이 어떻게!” 그는 20대에 독일로 건너가 이 분야 관련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고, 한국에 돌아와 지난 십수 년간 산림바이오매스 성공 사례를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이 나라에서 그가 겪을 오해와 고난을 알기에 필자도 말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완주 고산 자연휴양림 산림바이오매스 시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이어 괴산에서도 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왜 산림바이오매스인가?
우리는 60년대 후반부터 조림을 열심히 한 나라이고 국토의 63%가 임야라서 연간 생장하는 산림의 양과 벌채와 목재산업 부산물을 고려하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많습니다. 벌채 부산물과 목재산업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를 에너지로 사용하면 탄소중립으로 인정받으니 지역 탄소중립을 실현할 방법이고 우리 임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산림경영을 하는 데도 기여합니다. 숲을 더 크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Q) 유럽의 바이오매스 사용 현황은?
유럽에선 바이오매스를 난방 연료로 사용합니다. 유럽연합 발표를 보면 바이오매스 중 전기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건 30%이고 대부분 난방용입니다. 그리고 유럽연합 난방 재생에너지 중 85%가 바이오매스에요. 절대적이죠. 특히 목재산업 선진국인 오스트리아의 경우 전국 2300개 마을에 바이오매스 중앙난방을 보급했죠. 바이오매스는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므로 여타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온실가스 저감효과가 크다고 보는 겁니다.
Q)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조성 사업의 기대효과는?
괴산군 산림에너지자립마을은 가스피케이션(저온 열분해로 목재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것) 열병합발전을 보유하고 있어 소규모 열공급사업이지만 경제성 있는 사업입니다. 폐열은 마을의 난방에 사용하고 주민 스스로가 조합을 결성해 시설 운영을 책임지는 주민 참여형 사업입니다. 개별난방에 비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도 유리하고 편리하며 안전합니다. 특히 마을 어디에서도 온수를 쓸 수 있으니 지역소멸 대응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진행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주요 설비를 해외제품을 쓰다 보니 우리의 입찰제도에서 이를 적용해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보니 정책, 연구 단계를 거치면서 사업이 만들어졌는데 이미 바이오매스를 대규모 화력발전에 쓰고 있는 상황에서 소규모 분산형 사업을 새로 만들자니 연구자들과 정책담당자들의 동의와 협조를 얻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Q) 제도적 개선 사항은?
정부가 재생열에 대한 지원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최종에너지의 50% 이상은 열입니다. 탄소중립을 지역에서 이행하려면 재생열을 쓰는 사업에 대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재생에너지 지원사업을 규모에 따라 차등화 해야 합니다. 지역에서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