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커밍」 겨울호 (당원이 간다) 잊을 수 없는 경남도당 창당대회
잊을 수 없는 경남도당 창당대회
이원희 (기본소득당 경남도당 위원장)
지난 9월 21일에 열린 기본소득당 경남도당 창당대회가 이후에도 당원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될 만큼 극적인 행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행사 전날 새벽, 비를 뚫고 울산에서 창원으로 올 때까지도 말이다. 전날만 해도 ‘다행히 무사히 퇴근해서 내일 창당대회에 차질은 주지 않겠구나’하고 안도하고 있었다.
‘어라?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든 건, 창당대회 당일 오전이었다. 지난밤 내린 비로 인해 지역에 피해가 속출했다는 기사들이 연달아 보도되었다. 그리고 날씨를 확인했는데 빗줄기는 도무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두 달 전부터 경남지역 당원들과 중앙당 당직자들이 뜻 모아 준비한 행사여서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창당대회 준비를 시작할 때 나는 준비에 힘을 보태던 경남 지역 전국 대의원이었는데, 지금은 경남도당 위원장 후보자가 되었다. 지역 상황을 살피고 당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대회를 가장 중심에서 준비하고 고민하는 위치였다.
2019년, 기본소득당에 입당한 후 코로나 같은 외부요인으로 한동안 평온하고 안온한 평당원으로 활동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거운동원으로 참여하고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기후 위기의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줬던 창당대회날의 날씨
기본소득당은 20대 대통령선거, 이태원 참사,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나면서 꾸준히 성장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용혜인 의원은 민생 현장에서, 입법 활동에서 뛰어난 의정 활동을 펼쳐 많은 국민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고 기본소득당도 함께 주목받았다. 당원 가입도 늘고 당의 외연도 성장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당은 ‘새진보연합’이라는 선거 연합을 통해 정치적 퇴행을 막고 촛불의 정치 개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내가 그동안 당 활동을 하면서 만난 기본소득당 당원과 당직자, 의원 보좌관 모두 어느 누구도 뺄 것 없이 뛰어난 사람들이기에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아쉬웠고, 그로 인해 나 스스로 기본소득당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은 개인을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고, 개인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느라 매순간 위기에 몰리지만 현실에 쫓겨 그 의미를 성찰하기 힘들다. 해체되고 있는 공동체는 개인의 불안과 공포를 막아낼 연대의 그물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조차 저버리고 있고 ‘윤석열’ 정부 이후 재난 같은 사회적 위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당 경남도당 창당대회날은 기후 위기의 현실마저 극적으로 보여 주는 하루였다.
잠시 잦아들던 비가 대회 시간을 앞두고 거세지기 시작했다. 다시 도로가 물에 잠겼고 토사가 도로로 쏟아져서 교통이 통제되고 곳곳에 비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해와 창원을 잇는 창원터널이 통제되면서 창당대회 행사를 준비하던 온라인 소통방도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결국 안전을 위해 행사를 축소하고 줌(ZOOM)을 통해서 창당대회를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큰 비로 여전히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곳곳에 교통 통제가 발생하는 가운데 원래 규모로 창당대회를 진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과 창당대회를 세 시간 앞두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쉽긴 해도 다시 그때와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취소해야 하는 것은 외부단체 축사였다. 창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외부 축사를 많이 요청했다. 개인적으로 축사나 연대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당원들은 축사라는 형식을 통해 자기가 선택한 당이 타인에게서 인정받는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신지혜 최고위원이 축사하러 오기로 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부득이 축사를 취소한다고 안내해야 했다.
무사히 치러낸 경남도당 창당대회, 그 이후
급기야 비 때문에 KTX 운행이 중지되고 행사 준비를 위해 내려오던 당직자들은 밀양역에 발이 묶였다. 다음날 일정 때문에 중앙당 당직자들은 할 수 없이 서울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조차 기차가 없어서 돌아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
행사는 남은 자의 몫이 되었다. 다행히 비가 쏟아지기 전에 미리 내려와 있던 당직자들을 중심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급히 온라인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핸드폰 영상 송출을 준비하고, 비를 뚫고 2Km를 걸어 보조 배터리와 스마트폰 삼각대를 구해 왔으며, 현장에 있는 노트북과 모든 기기들을 총동원했다. 그 와중에도 위원장 후보인 내가 출마의 변을 다듬을 수 있도록 시간을 배려해 주었다. 대회를 잘 치르고, 앞으로 경남도당이 해야 할 역할과 비전에 대해서 당원들과 잘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창당대회에서 나의 가장 큰 역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몇 해 급격히 성장한 기본소득당은 성장한 외연에 걸맞은 지도부를 구성하고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먼저 그동안 코로나 같은 외부 영향 등으로 인해 당 활동이 서울 중심, 국회 중심이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미창당 광역시도당의 창당을 준비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충남도당에 이어 경남도당이 창당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당은 외적 성장뿐만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당원의 참여를 확대·보장하기 위해 대의원의 수도 늘리려고 한다. 당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예산·결산을 심의하고 선거 방침 등 당의 중요한 정책 결정에 당원의 참여를 보장하며 이후에 광역시도당이나 지역위원회 운영에 당원의 참여를 확대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기본소득당의 선언처럼 ‘정당의 정치는 당원에게’를 시도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대회를 같이 준비한 이들 덕분에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다. 악천후를 뚫고 비록 수는 적지만 귀한 이들이 기본소득당 경남도당 창당대회에 직접 참여해주었다. 9월 21일 이후 2개월 동안 기본소득당 경남도당은 기본소득당의 정치를 펼치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창당대회 1주일 후부터 부산 당원들과 윤석열 정권 퇴진 부산 집회에 참여했다. 신지혜 최고위원과 함께 김해, 통영, 양산, 거제의 당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최미희 경남도당 부위원장 및 여러 당원들과 경남 전역에 윤석열 퇴진 현수막을 달았고 창원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캠페인을 진행했다. 준비 모임을 시작한 때로부터 4개월, 힘도 들고 부족함도 느꼈지만 당원들에게서 자극받고 에너지를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창당대회를 마치고 비가 잠시 잦아들자 뒤풀이할 겨를 없이 모두 서둘러 돌려보내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날을 기억하며 모두 환한 얼굴로 웃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